생활의 지혜

사건 하나에 법률 하나

안영도 2019. 1. 4. 08:21


"One Law for Every Contigency"


한국의 법체계는 복잡하기로 악명 높다.

새로운 사건·사고· 현안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법률을 추가하기에

법체계가 그야 말로 누더기가 됐다.


우선, 웬만한 법률 전문가들은

한국이 "특별법 천국"(서울법대 교수 정인섭) 혹은

"특별법 공화국"(서울법대 출신 나경원)임을 익히 알고 있다.

체육대회·대형행사·특수현안이 있을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별법이란 일반법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예외에 관한 규정이다.

"특별법 천국"이란 한국 법체계가 온통 예외조항으로 가득차 있다는 말이다.


근래에 와서 "단발성 사고" 피해자 이름을 딴 법률제정 관행이 유행한다.

어떤 유치원 아동이 교통사고 당하면 처벌강화 특별 규정을 만든다.

음주운전 사고가 한 건 생겼다고 단속규정을 특별히 강화한다.


주무부처가 마음대로 하는 시행규칙· 행정지침은 더욱 심하다.

교육부의 대학 신입생 선발지침, 중고등 학교 제도는 해마다 바뀐다. 

건설부의 주택 지침은 40년 사이 140번 이상 덧칠이 됐다.

그리하여 웬만한 전문가도 종을 잡을 수 없게 됐다.


자동차 도로의 시설 및 신호체계에는 아무런 원칙이 없다.

사고날 때마다, 청원이 있을 때마다

신호등, 표지판, 낚시찌, 과속 방지턱. 카메라 등이  덕지덕지 설치됐기 때문이다.

"사망사고 발생지점"이란 표지판은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기상천외이다.

그리고 이제 10차선 도로 50킬로, 학교 앞 20킬로로 속도가 제한된다.


서양언론이 비판하는 것처럼

한국의 입법관행은 그야말로 "사건마다 법률 한  개"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규제가 나날이 늘고 행동의 자유는 점차 줄어든다.

전체 법률체계는 얼키고 설켜 사리분별이 불가능해 진다.


문제는 그런 관행이 사회질서 확립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특별한 규정이 역효과를 낼 때가 적지 않다. 

시간강사 처우 개선 특별법이 좋은 보기가 된다.


더 심한 문제는 법이 복잡하면 지키기가 어렵고

필요 이상으로 행동자유를 구속하면 준법의지를 저상시킨다는 점이다.

운전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지만

범칙없이 5킬로미터 주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서

모두가 규칙을 위반한다.


그리고 탈법은 습관성, 전염성, 중독성이 있다.

1) 습관성: "한 번 배운 도둑질 평생 간다."

2) 전영성: "망둥이 뛰면 꼴뚜기도 뛴다."

3) 중독성: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그런 까닭에

복잡하고 엄격한 법률 체계는 무질서 사회를 조장하게 된다.

아마도 복잡한 교통규칙이 OECD 최고 사망률 국가를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의 납삽한 법률 체계가

질서 확립에 역효과인 사실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불특정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


무릇 모든 사회규칙은 비용을 초래한다.

첫째가 준법비용이다.

교통신호 체계에 맞출려면 시간, 연료를 낭비하고 행동자유를 박탈당한다.

삼페인 한 잔 마시고도 운전하지 못하면 어떤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사건마다 법률 한개"로 30년 쯤 지나면

누구든 옴짝달싹하기 어렵고

집에 가만 있어도 범법자가 될 수 있다.


둘째가 집행비용이다.

규제가 많을 수록 정부의 집행비용이 커진다. 

교육부 및 건설부 조직이 비대한 이유가 바로 복잡한 규정이다.

정부조직의 운영비는 모두 정직한 시민이 납부하는 세금에서 나온다.

복잡한 교통체계를 시설하고 운영, 유지하는 비용도 모두 세금이다.


비용이 과다하면 준법도 집행도 어렵게 된다.

결국, 법만 있을 뿐 지켜지지는 않는다.


경제학 이론으로 "예상외 귀결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The Law of Unintended Consequences)

하나의 정부 정책이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제 각각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권고이다.


2018년 마지막 국회에서

정말 오랫만에 여야가 합의해 

"삼디" ("쓰리 디"가 아님) 작업 외주 금지법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먼저, 계약의 자유를 침범하는 이 법률은  아마도 위헌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고방지의 효과가 있을 것인가?

천만의 말씀, 삼디 작업이 필요한 이상 사고는 발생한다.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대신 예상외 귀결이 생길 것임은  안봐도 뻔하다.
첫째, 수탁업체의 직원은 일자리를 잃는다.

둘째, 위탁업체 직원이 대신 상해를 당할 것인데 그 피해는 국가가 보상할 것이다.

결국 너와 나의 세금만 늘어난다.

셋째, 수탁업체 직원은 안 되지만 위탁업체 직원은 사고를 당해도 된다니 가치관의 혼동이 초래된다.

갑이건 을이건 "사람이 먼저" 아니던가?

넷째, 결국 위험한 작업 자체가 금지될 터인데 그러면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돌아간다.

정말 "헬 조선"이 된다. 그나마 "사람을 다치게 할 개연성이 있는" 말타기도 금지될 것이다.


그럼 어찌 하오리까?


정색하고 해답을 말하면 

특별법, 특별조항을 새롭게 도입할 게 아니고

기존 법률 체계를 단순·명료하게 만들고 제대로 시행하는 일이다.

지키기 쉽고 집행하기 쉬워야  범법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

그것이 질서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유일한 길이다.


불행히도 한국의 정치인들은 단선적 사고로 훈련돼

눈 앞에 벌어진 일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비용과 편익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에 꼭 필요한 법만 제정되도록....

그것이 바로 소중한 더 없이 소중한 우리의 자유와 재산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