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문득이의 주문: "사회주의는 반드시 가야할 길"

안영도 2019. 12. 21. 13:56


文대통령 “최저임금-52시간 반드시 가야할 ” 

                (동아일보 2019. 12. 20)



결과적 평등 및 과정통제

사회주의  최고 이론가 마르크스 및  성공한 실천가  레닌은

모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일한 의미로 보았다.

예컨대, 공산당 독재인 쏘련(USSR)의 국명이

"사회주의 공화국"(Socialist Republics)이었다.


그런 마르크스와 레닌이 원하는 것은

결과의 절대적 평등 및 과정의 절대적 통제에 있었다.

말하자면 목표와 수단을 모두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주의 실험은 대실패로 끝났다.


체육에서 "대~~한민국"이지만  경제에서는 "헬 조선"인

한반도 남반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주의인가 아닌가?


무조건적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최저임금제나 조 어거지는

결과의 "절대적 평등"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의 끝은 하향 평준화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으니

필연적으로 모두 가난한 빈곤 평준화가 된다.


나아가

주 52시간 의무화, 분양가 상한제, 소유주택 수 제한

등은 전형적 "과정의 통제"가 된다. 

 

결국 절대평등과 과정통제가 문득이 꿍심의 핵심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이 수족임을 자임하는  어떤 법무장관은

언필칭 "국민" 앞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자랑스레 말하게  됐다.


각설하고,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누구나 실수를 범한다.

그럼에도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나라 꼴이 "헬 조선" 형국임에도  

국민 과반수가 "두상이 파괴돼도 지지한다"는  문득이는 어느 쪽일까?

사회주의의 실수를 반복할까, 아닐까?

참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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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자유경제주의자 아담 스미스 및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사회적 약자를 방치하자거나 절대적 자유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불우한 사람을 도우는 일(compassionism) 및

정해진 경기규칙의 준수(rule of law)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