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원칙

안영도 2012. 7. 21. 08:10

"구희"라는 볼게임(球戱)을 아시는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의 공통점은

한국 사회의 원칙을 허물어 버린 일이다. 

 

세 양반 덕분에 대한민국은 법질서가 확실하지 않다.

무엇이건 얼렁뚱땅 편한대로 해결해 버린다.

 

(하기사,

양심을 가장한 행동하는 욕심,

헌법이건 뭐건 깽판 만드는 막됨,

대선 앞두고 아들을 위장취업시키는 무개념

등등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마는....)

 

지도층은 무슨 죄를 저질러도

국민 화합, 경제적 기여를 내세워 사면해 준다.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수시로, 자기 편한대로 경선규정을 바꾼다.

여수 엑스포에서 본 것처럼

목소리 큰 몇사람이 떠들면 금새 규칙을 변경한다.

 

 

안 된 얘기이지만 원칙이 없는 사회는 장래가 없다.

원칙은 가장 기본적인 경기규칙으로서

현재 행동의 지침이 되고 장래를 위한 기능연마의 지침이 된다.

원칙이 허물어지면 현재가 제멋대로일 뿐만 아니라

장래도 발전이 있을 수 없는 캄캄 절벽이다.

 

여기  어떤 볼게임이 있다.

그 구희(球戱)의 경기규칙은 고무줄이다. 

날씨에 따라 공의 크기가 바뀐다.

1/4의 선수가 합의하면 발을 쓸 수도, 손을 쓸 수도 있다.

길 수도 , 걸을 수도, 뛸 수도, 날 수도 있다.

세 사람만 동의하면 다른 경기자를 붙잡아도 되고, 걷어찰 수도 있다.

모바일 투표 결과에 따라서 응원단을 선수로 차출해도 무방하다.

막대기, 칼, 총, 대포의 사용이 허용될 수도 있다.

최우수 선수로는 당연히 최고 얼짱이 뽑힌다.

 

 

자, 이것이 무슨 구희인가?

야구는 아니다.

축구도 아니다.

농구도 아니다.

하키도 아니다.

골프도 아니다.

테니스도 아니다.

비치 발리볼도 아니다.

게이트 볼도 아니다.

크리켓이나 라크로스가 될 수는 없다.

크로스 컨추리는 더더욱 아니다.

물론 카 레이싱이 될수가 없다.

 

그러면 이 요상한 경기는 무엇인가?

바로 구희(狗戱 혹은 寇戱)란 것이다.

정말이지,

선수들은 시합에서 파이팅하고

기량을 높이기 위해서 끊임 없이 트레이닝한다.

관중은 익사이팅되고 이그질러레이티드하며

그 덕분에 스포츠 사업은 부밍하고 국가경제는 그로잉 한다. 

 

(실은, 개판狗戱 아니면 도둑잔치寇戱가 된다.)

 

_________

 

그래, 니말이 맞다.

원칙을 지켜면 불통이다.

소통하려고 신축성을 부리면 것은 곧 원칙파괴를 의미한다.

그래서 내 소신은 원칙이고, 고집이며, 불통이다.

 

직업이 잠룡(潛龍)이라는 정모씨는

누구한테 들었는지 모르지만 미생지신(尾生之信)을  들먹인 적이 있다.

(설마 본인이 莊子를 읽었을리야. 축구 한 가지만도 불감당일 터인데.)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미생지신 때문에 미생은 죽었지만

세상은 혼란 없이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주관적 판단에는 언제나 그 기준이 애매하다.  

미생의 경우에 물이 어느 정도 찰 때까지 기다려야만 옳았다는 기준이 없다.

누구나 편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저 밑으로 물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발바닥을 적시면,

혹은, 정강이를 적시면 ,

허리에 차야만

아니면, 목까지 찼을 때에

도의적·합법적으로  피신할 수 있나?

 

나아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여덜째 습관이란 이렇다.

물이 차오른다고 한 번 약속을  파기하면

나중에는 비가 와도 어기게 된다.

옷이 한벌 뿐이기 때문이다.

마누라 잔소리가 심해서 위반할 수도 있다.

내 기분이 나쁘면 가다가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질나서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당연히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자중해야 한다.

 

물론 생명체는 목숨을 잃으면 끝이기에

생명을 잃는 극단적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미생이라고 목숨을 잃자고 한 짓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임이 오리니 망서리다가

빠져 나올 기회를 놓쳤을 뿐이다.

그게 세상사는 이치이다.

 

위험은 도처에 있어서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불확실한 사고 때문에 약속을 파기한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약속파기가 정당화된다.

가다가 차사고가 나면 나만 손해인 걸....

(사이클링 연습하다가 졸지에 세 사람이 죽지 않았나?)

 

처음 듣는 분은 놀라겠지만

미국 연방헌법의 본문은 7개 조항 뿐이며 지금도 "처음처럼"이다.

세상이 바뀌어 감에 따라서

250년 동안에 27개의 수정조항을 추가했을 뿐이다.

다 합쳐도 34개 조항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인 어느 누구에게도 신성불가침이다.

 

미국에선 누구도 "그놈의 헌법 때문에"라고 말하지 않는다.

헌법의 해석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단은 모든 논란의 종결자가 된다. 

클린튼이 탄핵을 면하고(상원), 오바마 케어가 살아 났으며,그걸로 끝이다.

은 일을 두고 누구도 다시금 논란을 벌이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고, 완벽한 법조항이 없다.

미국인이라고 헌법조항의 부작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총기소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고 그 때문에 총기사고가 빈발한다.

그럼에도 총기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만 생각해서 총기소유를 금하는 것은 단선적 판단이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총기사고의 방지" 만이 아니다.

민간의 총기소유가 더 많은 범죄의 예방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는 옳고 그러고를 떠나서

헌법이란 "하늘이 두쪽나도" 어겨서는 안되는 원칙임을 모두가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법질서는 이렇다.

법체계가 단순해서 시민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한다.

준법자는 거리낌 없이 편하게 살아간다.

반면에 법집행이 준엄해서  범법자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벌칙이 부과된다.

지도층, 전문직업인, 대기업의 범죄에는 특히 가혹하다.

한국에서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는 대다수 인물은 미국이라면 250년 징역감이다.

불공정 거래로 적발된 대기업에는 2조원 정도의 징벌적 배상금이 부과된다.

그런 덕분에 미국은 세상에서 법치가 가장 확실하게 뿌리내린 나라가 되었다.

 

한국의 준법정신은 세계에서 바닥이다.

윗물이 더럽기 때문에 아랫물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윗물 문제는 그 얄량한 융통성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가희 무법천지가 되었다.

 

거니씨, 멍구씨에 집행유예가 선고되니 철곤씨에게도 적용된다.

승연씨, 호진씨는 또 어떻고.....

국회에서 최류탄을 터뜨려도 무사하고,

대리·중복·유령 투표로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가 된다. 

100억원 단위의 뇌물을 받고도 원내 대표로서 폼 잡는다.

또 다시 뇌물을 받아도 동료들이 이른바 방탄국회를 열어준다.

 

여당후보도 야당후보도 모바일 일반경선으로 뽑잔다. 

그러면 정당이 왜 있으며,

한국은  대한 국민 공화국이 아니고 대한 "클리커" 공화국인가?

 

그런 모양의 누이좋고 매부좋은 이면에서

돈 없고 힘없는 필자와 같은 무지랭이는

법, 나아가 정당, 정부의 꼴조차 보기 싫어진다.

꼼수로 한 때에는 영화를 누렸지만

지금은 감옥에 있는 봉주씨 조차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런 X팔, 누구는 범털이고 누군 개털이냐?

이건 틀림 없이 야당파괴 공작이야."

 

강용석씨는 여론이 배척하고 지도층이 기피하는 바람에

아무 죄없이 범죄자가 됐다.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라도 밉보이면 죄인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아주 단순한 한 가지 일을 두고

8년동안 15개 국가기관에 불려다니면서 심문, 조사, 수사, 재판을 받았다.

급기야 대법원까지 갔다.

1심, 2심, 3심 재판에 걸쳐서 모두 무죄를 선고하려고

수시로 바뀌는 담당 검사, 판사, 재판장, 그리고 변호사까지 

줄잡아 30여 명의 대한민국 최고급 인력이

덕지덕지 3.000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읽다니.....

 

(물론 30명 중에서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

자세히 읽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것이 무지랭이 국민의 고민이다.

각각이 충실하게 읽으면 재판 종료에 20년은 족히 걸리고,

그에 필요한 세금은 모두 내가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단순사건의 수사기록이 덕지덕지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체계가 그렇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법은 법이 아니고, 법 아닌 것이 법이 된다. 

법질서가 혼돈 그 자체이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법체계가 있다: 선법, 악법, 무법.

그 셋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악법이 아니라 무법이다.

사람은 나름 대로 지혜가 있어서 악법에도 대처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낸다.

예컨대 지독한 악조건 속에서 에스키모인들은

무법지대인 북한 혹은 시리아 사람들보다도 평화롭게 살아간다.

 

무법인 경우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세상은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무법천지"가 된다.

한국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안되는 일이 없고, 그렇다고 되는 일도 없다.

원칙없는 세상이니 냄새가 진동하는 지언이도 나오는 족족 붙는다. 

원칙없는 세상이니 천하에 막돼먹은 선둥이도 감옥에 넣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전도사인 하이에크는 말한다:

"예외 없는 법치가 유지돼야 세상이 발전한다.

설사 예외조치가  이해당사자 모두의 이익이 된다 하여도...."

그 소리 들으면 잠룡 정모씨가 미생지신의 깊은 의미를 깨달으려나?

 

요컨대

신축성은 개체선에 불과하지만

일관성은 공동선의 바탕이 된다.

 

원칙 없이 소통하는 나라에서 

지도층은  두루두루 해피하지만

공동체로서의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는 일은

점점 멀어만 ````` 간````다.

 

 

 

후기 ①:  천하의 윤영신 기자도 문제를 인식할뿐 진단은 제대로 못하네요.

              [태평로] '희망 不在' 대한민국 (2012. 8. 8)

 

        ② 보세요, 언제라도 원칙을 허물 핑게는 생기지요.

            (왜 처음엔 가만있다가 불리하면 규칙을 두고 시비하지요?)

            (이번에도 민주당 답게 신축성을 발휘하려나?)

              모바일 투표 불공정 시비에 휘말린 민주당 경선 (2012. 8. 27)

       '모바일 헛스윙'… 발길 무거워진 손학규·김두관  (2012.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