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와 서수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잘 따져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한글 자모의 발음이 거의 일정하여 읽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과학적이라기 보다 "기계적인" 특성이다. 문자의 효 용성은 의사전달의 정확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터인데, 어법의 논리성이나 표현의 엄밀성이 핵심적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글에는 보완해야 할 점이 아주 많다.
그 중의 하나가 기수(基數)와 서수(序數)를 구분하는 일이다. 예컨대 어느 교수가 "다음 주까지 2장을 공부해 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2개의 장을 말하는지 제2장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차례를 나타내는 서수인 경우에는 두번째, 제2번, 제2장, 제2세기 등으로 말한다면 모든 혼란은 없어진다. 어떤 고소인이 "3심에서 패소했다"고 하면 헷갈리지만 "3개심에서 패소했다" 혹은 "제3심에서 패소했다"고 말하면 분명해진다.
정부 방침에 따라 2011년 7월부터 주소를 표기하는 방식이 길 중심으로 바뀐다. 보도에 의하면 정부는 15년 동안 이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체계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에겐 아주 초보적인 문제가 당장 거슬린다. "1길, 2길, ...... 17길," 이게 도대체 무어람. 어법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하기와 듣기에 거북하다. 이왕이면 "제1번 길," 하다 못해 "1번 길"이라고 라도 불러야 될 것이다. (어차피 외국인에겐 도움도지 않을 일이니까 따질 것도 없지만 "17-gil" 등의 영문 표기는 그야말로 넌센스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니 수 없는 공청회를 거쳤겠지만 어찌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지.....
'생활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도력 위기는 언행 불일치에서 온다 (#2) (0) | 2011.07.22 |
---|---|
지도력 위기는 언행 불일치에서 온다 (#1) (0) | 2011.07.19 |
기업이여, 꼴찌를 뽑으시라 (0) | 2011.02.18 |
전관예우 = 피해자 벌주기 (0) | 2011.01.14 |
내 이름의 영문표기 (21) | 2010.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