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기업이여, 꼴찌를 뽑으시라

안영도 2011. 2. 18. 08:13

전과목 A+의 함정

 

 A+에 자격·면허증 17개…'탐나는 졸업생' (조선일보, 2011. 2. 18.)     

                                                    

이것도 유행인지 모르지만 2010년 무렵부터 "4년간 전과목 A+ 를 받은  대학생"이 심심찮게 보도된다.  그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 뉴스 가치가 있었지만,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과목 A+"가 양산되어 화제에서 멀어질지도 모르겠다. 

 

전과목 A+. 듣기는 참 좋지만 정상적인 사람은 이룰 수가 없고, 이루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한마디로 그건 순 어거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거지인 이유를 설명하기 이전에 왜 그런 무리가 발생하는지 짚어보자. 학생들이 좋은 성적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기업이 뽑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이 전과목 A+를 뽑는다면 겉보기에 속아서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왜냐하면 전과목 A+  학생이 우수한 직장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 점부터 생각해 보자.

 

첫째, 현대의 경쟁여건은 모범생 출신의 FM 경영자보다는 색다른 발상을 할 줄 아는  기업가를 원한다. 업종을 불문하고, 조직의 대소에 관계없이, 기업경쟁력의 키워드는 혁신(innovation)이다. 정의에 따라서 혁신은 과거, 즉 FM에서의 일탈을 말한다. A+ 범생이는 선천적·문화적으로 일상에서의 일탈에는 서툴다. 그런 사람이라면 정해진 생산라인에서 정해진 틀에 맞추어 정해진 제품을 대량으로 뽑아내던 구시대라면 모를까, 요즈음과 같이 튀는  발상이 필요한 시대에는 크게 쓸모가 없다.

 

비슷한 맥락의 얘기이지만 전과목 A+를 받는 학생의 관심은 온통 공부와 도서관뿐이다. 그리고 A+를 받았다면 그가 배우고  경험한 것은 학교와 집뿐일 가능성이 높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는 부족하다. 할 줄 아는 것은 탁상의 문제를 푸는 일이 거의 전부이리라. 그런 사람을 어디에다 쓸까? 

 

전과목 A+의 두번째 문제는 그 "쟁취" 과정에 있다. 온갖 어거지가 동원되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어거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설명한다. 어거지를 통해서 전과목 A+가 쟁취됐다면 그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실력이든 어거지든 A+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완벽주의자는 남은 물론이고 자신의 잘못을 쉽게 받아 들이지 못한다. 우선, 남의 잘못을 수용하지 못하면 지도자가 되기 어렵고  사회성을 기대할 수도 없다.  직장인으로 큰 핸디캡이다. 다음,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인간으로서 실수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런 인간적 실수가 용납되지않아서 후회와 갈등이 자꾸만 쌓인다. 조직에서 맡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심각한 장애가 되기도 한다. 기업이 A+를 뽑는 이유가 장래의 지도자를 만들 목적일 터인데 그래저래 헛된 꿈이 되기 십상이다.

 

이제 남은 숙제를 할 차례이다. 왜 4년간 전과목 A+가 어거지인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우선 제대로 된 학교라면 그런 학교에서 인간에 불과한 학생이  전과목 A+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의 교육은 교강사의 배경 및 교육의 내용 면에서 천차만별이다. 아마도  40개 정도의 과목을 이수해야 할 터인데, 일개 인간이  40가지의 서로 다른 척도에서 모두 최우수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먁에 누군가가 어느 대학에서 "공정경쟁을 통해서 자기실력으로"  전과목 A+를 받았다면 그건 출신대학의 교육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증거이다. 내용 및 형식 면에서 그 학교의 교육이 천편일률적일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대학교육이 천편일률적이다? 차라리 집에서 독학하지.....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고, 실수 연발이다. 그런 인간이 매우 다양한 40여 개의 일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는 것은 정상적이고 공정한 경쟁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확률적으로 식스 시그마에 가깝다. 논리적으로 따져서 가능성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한 마디로 "어거지"가 통했기 때문이다. 사전 공모 아니면 사후 조작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필자는 직업이 지식행상이라서 여러 대학에서 강의해 왔다. 그래서 직접 경험한 바도 많고,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어거지 학점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는지를 잘 안다. 그래서 단정적으로 말한 것이다.

 

자고로 학점의 부여는 상대적이고 그래서 공정성이 생명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은 누구라도 대학의 학점부여 체제가 공정하지 않음을 알 것이다.  예컨대 무슨 이유건 현장에 없으면 결석이다. 그런데 학교가  온갖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해 주라고  제도적으로 강요한다. 공식적으로 성적 정정기간을 만들어 두고 성적의 사후조작을 장려한다. 학생들은 그 기회를 놓지지 않고 "이과목에서 Ao를 받으면 전과목 A+를 놓진다," "부모가 입원해 있고, 생계를 내가 유지하는 형편에 장학금 놓지면 인생 망친다," "실수하여 시험을 잘 못 봤는데 리포트 제출의 기회를 특별히 줄 수 없느냐"  따위의 거짓말, 협박, 읍소, 협상제의가 쏟아진다. 외부의  영향력이 개입된다고 알려진 바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sex advancement의 제의도 있을 것이다. 

 

재미삼아 학점과 관련된 필자의 독특한 경험을 하나만 소개한다.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을 통하여 저녁식사 제의가 들어왔다. 가보니 전직이 교육부 차관이었고 현직이 어느 대학교 부총장인 사람이 "밥을 사는" 자리였다. 말인즉슨 아들이 필자의 수업을 듣는데 철이 없지만 외아들이고 해서 좋은 학점을 주도록 청한다는 것이었다. 일어서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봉투를 하나 주었다. 길쭉한 봉투였으면 안 받았겠지만 정사각형이라서 받았다. 집에 와서보니 롯데 백화점 십만원 상품권 하나와 부총장의 부인이 정성스레 쓴 "아들이 교수님 강의를 좋아한다"는 알림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돌려 보내자니 그것도 어렵고 해서 상품권은 집사람에게 주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거지가 아니라면 생리적으로,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전과목 A+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전과목 A+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런데 전과목 A+를 받은 학생이 입사를 지원했다?  필자가  경영자라면 그런 사람을 뽑는 일이 결코 없으리라. (대학에서 생활하는 필자의 취향을 말하라면 정말 disgusting한 것이 학점구걸이다.)

 

후기: See, I told you so.

       '서울대의 전설'이던 전과목 A+ 로스쿨생, 범죄자가 된 사연 (조선일보, 2014. 1. 5.)

        거짓말했다가 서울대 로스쿨 합격 취소당한 '천재 소녀' (조선일보, 2014.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