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는 스스로 희다고 말하지 않는다
鵠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
2011년 벽두에 전직 대검차장이 어떤 법무법인에서 1억원씩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리고 법무법인이 소속된 전직판검사에게 매달 1억원씩 급여로 줄 수 있는 것은 전관예우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관예우"(前官禮遇)란 퇴직한지 얼마 안되는 전직판검사를 변호사로 고용한 피고 혹은 원고가 유리하도록 법원이나 검찰에서 결정함을 말한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그 전제조건으로 법치가 확립돼야 함을 말한 적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현재 시점에서 한국의 법치는 매우 취약하다. 그 대표적 증거가 바로 전관예우이다.
본시 사법(司法)은 오로지 사실(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하게 되어 있다. 전관예우는 그런 사법원칙과는 달리,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검찰이나 법원이 시실 "판단"과는 다른 임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전관예우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릇 송사(訟事)란 원고와 피고,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뺐고뺐기기 놀음(zero-sum game)이다. 피고가 옳으면 원고가 그르고, 피해자가 유죄이면 가해자는 무죄가 된다. 그 중간은 없다. 만약에 전관예우 때문에 죄의 유무에 대한 결정이 뒤바뀌면 피해자가 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
피해자가 죄인이 되어 벌을 받는다?
인생살이 완벽하지 않고,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문제는 확률에 있고, 빈도가 핵심이다. 평생에 한 번쯤 코가 깨진다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울 수가 있다. 그렇지만 허구헌 날 코가 깨진다면? 앓느니 죽지.
사법부도 사람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벌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또 어느 나라에서나 그런 일은 발생한다. 그러나 그런 잘못이 구조적으로,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사법부는 신뢰를 잃고 법치는 망가진다.
한국의 전관예우가 우연히,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전관예우라는 말이 수십년이나 유행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그 일상성을 대변한다. 위의 전직 대검차장 사건과 비슷한 때에 대법관으로 추천받은 이도 월급 1억원씩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시기에 법무법인을 마다하고 대학교수로 간 전직 대법관의 도덕성이 인구에 회자됐다. 그런 사실 역시 전직 판검사가 월급 1억원을 받는 일이 일반화됐음을 증명한다.
공개되지 않은 사람을 모두 합치면 법무법인에서 월정급여 1억원 이상의 전직 고위공직자는 수 없이 많다. 월급 1억원을 받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받을 형편이다. 그런데 전직 판검사의 쓰임새를 전관예우 이외의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에서 전관예우는 일상생활의 일부분이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에는 전관예우 바람에 "처벌을 받게 되는 피해자"가 나날이 발생한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고도 법치(rule of law)를 입에 올릴 수 있을까?
"법치"라는 기본 중의 기본도 갖추지 못하고 선진국이 될까? G20 회의를 수십번 "성공적으로" 개최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나 살기 억울하면 누가 뭐래도 좋은 세상이 아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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