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음주운전,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다

안영도 2010. 8. 22. 13:02

''밤에 얼굴 빛만 보고 음주 단속하라고?'' 일선 경찰들 '부글'

(조선일보, 2010년 8월 22일)

 

표제는 서울 경찰의 음주단속 변경에 대한 반응기사이다. 서울 경찰이 "길을 막고 모든 운전자의 음주여부를 검사하는 방식"에서 "의심이 가는 사람만  제지하여 확인하는 것"으로 바꾸겠다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같은 상부 방침에 대해서 음주단속을 시행하고 (실적을 올려야할) 일선 경찰관리들이 불평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음주단속은 필자를 포함한 무지랭이 서민들의 일상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잘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1> 관련 실정법 규정

 

헌법은 국민의 신체 및 이동의 자유에 대해 규정한다:  제12조 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경찰관 직무 집행법 제1조 제2항은 말한다: ② 이 법에 규정된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

 

동법 제3조 제1항 및 제2항은 다음이다: ① 경찰관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를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다; ② 그 장소에서 제1항의 질문을 하는 것이 당해인에게 불리하거나 교통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질문하기 위하여 부근의 경찰서·지구대·파출소 또는 출장소에 동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당해인은 경찰관의 동행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도로교통법 제44조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금지)의 全文이다: ①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여서는 아니된다.  ② 경찰 공무원은 교통의 안전과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하여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운전자가 술에 취하였는지의 여부를 호흡조사에 의하여 측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운전자는 경찰공무원의 측정에 응하여야 한다. ③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술에 취하였는지의 여부를 측정한 결과에 불복하는 운전자에 대하여는 그 운전자의 동의를 얻어 혈액채취 등의 방법으로 다시 측정할 수 있다. ④제1항의 규정에 따라 운전이 금지되는 술에 취한 상태의 기준은 혈중알콜농도가 0.05퍼센트 이상으로 한다.

 

 이하는 필자의 생각이다.

 

<2> 관련 법규에 따른 해석

 

길을 막고 무차별적으로 시행하는 음주단속은 명백히 위법이다. 그리고, 도로교통법 제44조 제4항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헌법이나 도로교통법의 금지하는 것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위험한 운전" 이지 음주운전 자체가 아니다. 필자를 포함하여 소위 "술이 센" 다수인은 혈중농도 0.05 퍼센트 정도이면 심신이 취약한 사람보다 훨씬 안전하게 운전한다.

 

<3> 음주단속의 목적

 

세상사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짚어보아야 할 것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인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자. 왜 음주운전을 단속할까?

 

술이 건강에 나쁘기 때문일까? 음주운전이 차량이나 도로를 파손할 가능성이 높아서일까? 음주운전 단속 실적이 경찰관리 직무평가의 기준이 되는 까닭인가?

 

위의 어느 것도 아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신체와 재산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음"이 그 이유일 것이다. 운전자 자신에 대한 피해의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단은 논외에 부칠 수 있다. 운전자는 모두 成人이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자신의 행위는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기본원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전도 정부가 책임지고 그래서 금지해야 한다면, 음주운전에 앞서서 엄홍길, 오은선, (고) 고미영 제씨의 일상사를 불법화했어야 한다.

 

필자의 결론이 맞다면 길을 막거나, 혈중 농도에만 의존한 판단은 모두 헌법의 정신에 위배된다. 필자가 지금보다 15년 젊었을 시절에는 음주단속에 임한 "의경"과 자주 다투었다. 물론 그들의 행위만를 문제삼은 것은 아니기에 언제나 "내가 귀하와 시비하는 이유는 시민의 불평을 상부에 보고하라는 취지이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랬더니 한 의경이 주장하기로 "어떤 사람들은 술을 먹어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운전도 똑바로 해요"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어쩌자고? 술을 먹었지만 운전을 똑바로 하는 사람을 왜 잡아?

 

<4> 안전과 자유의 균형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필자 세대는 초등학교부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미국 독립투사 패트릭 헨리의 말을 듣고 자랐다. 그것이 교과서에 실린 것은 우리 정부도 자유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와 안전은 인간 누구나 추구하는 지상의 가치이다. 불행히도 둘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둘다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을 취할 수밖에 없고, 균형점의 위치는 가치관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안전에만 치중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안전을 그토록 중요시하기에 우리 사회에는 "길을 막고 시행하는 무차별적 음주단속"이 일상화되었고, 많은 운전자가 그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치르는 대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봄직하다. 운전자 및 통행인 모두가 신체의 자유를 구속당하고, 에너지는 낭비되며 대기오염은 촉진된다. 길이 막혀서 위급한 환자가 치료의 시기를 놓질 수도 있고, 수출화물이 적기에 실리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만취한 운전자가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음주운전 단속의 강도와 음주운전 사고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막연히 짐작할 뿐이지 학술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법이 아무리 엄해도 음주운전 사고가 없어지지 않을 것임은 누구나 짐작한다. 필자가 즐겨 하는 말이지만 음주운전을 완벽하게 단속할 방법은 네 가지 뿐이다: ① 한국의 모든 술을 없애는 것 ② 모든 차량을 없애는 것 ③ 모든 도로를 없애는 것 ④ 모든 운전자를 없애는 것. 그런데 그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으므로 음주운전의 근절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작정 단속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 균형점은 당연히 적절한 수준의 자유를 보장하는 지점이다. 안전도 중요하지만 자유 역시 무시할 수 없으므로 무작정 음주운전을 단속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미국은 1919년에 금주법을 도입하였지만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다음에 철회하고 말았다. 그 사건은 인간에겐 안전 못지 않게 자유도 중요함을 증명한 역사적 실험이 됐다.

 

운전과 관련된 안전과 자유의 문제는 과속단속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곳곳에 설치된 과속 촬영 카메라는 불필요하게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므로 재고의 여지가 크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유난히 과민한데 다른 글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에서는 "텅빈 새벽의 고속국도에서 110㎞로 달리자면 성자(聖者, Saint)의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만 지적하기로 한다. (온갖 죄는 다 특별사면 하면서 과속운전 벌금은 왜 해당이 없냐?)

 

<5> 타인의 보호

 

음주운전 때문에 무고한 제삼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디 그뿐이랴.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것은 인생사의 일부이며, 그 형태는 예측을 불허할 만큼 다양하다. 당장 교통사고만 생각해도 어떤 경우이건 "피해자"는 억울하다. 일반 교통사고로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이 다치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잃으며 그것은 음주운전에 비길 바 아니다.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도 많고, 빌딩의 붕괴나 화재, 지반의 함몰, 가스의 누출, 각종 폭발 등으로 안전에 대한 위협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다.

 

어떤 사고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으므로 어느 정도의 위험 감수는 불가피한 것이 불쌍한 우리내 인생의 역정이다. 그러니 타인의 신체에 대한 위해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을 음주운전에만 국한시킬 일은 아니다. 그런 이유만으로 음주운전을 유독 심하게 다루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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