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관련 의혹 처리의 "FM"
재벌에 관한 의혹은 잊을만 하면 다시금 나타나곤 한다. 2010년 10월에는 한화그룹과 태광그룹에 대한 수사가 동시에 진행됐다. 한화그룹은 처음이 아니니까 제쳐두고 태광그룹 사건의 진행과정을 재미 삼아 짚어보고자 한다. 미래를 예측함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는 것이 우리나라에는 재벌의 탈법행위를 다루는 FM (군대 용어로 "정해전 규범"이라는 의미)이 있기 때문이다.
제1단계: 사법당국에 의한 혐의의 축소. 태광그룹에 관한 문제는 언론의 보도만 보아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태광그룹은 1990년대 후반부터 투자그룹의 공격대상이었는데 그것은 기업감리장치(corporate governance)가 고장나 있었음을 의미한다. 우연히도 필자는 1998년부터 태광산업 주식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홍콩에 기반을 둔 투자그룹으로부터 "경영진의 부적절한 행위에 항의(proxy fight)할 예정이니 의결권을 위임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장하성 펀드는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각종 의혹이 제기되어 사회적 문제가 됐음에도 사법 당국은 수사하는 시늉만 하고 덮고 말았다. 그런 처리과정에서 언론은 침묵하는 방법으로 대응하였고 "사회의 목탁"임을 포기하였다. 잘 알려진 대로 재벌의 주요한 로비 대상에 언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2단계. 마지 못한 수사. 의심스런 행위의 강도가 높아지고, 사법당국이 모른채 할 수 없는 결정적 계기가 생긴다. 태광그룹의 경우는 아마도 투자회사의 고발이 그런 시발점이었던 듯하다. 각종 매체가 크게 다룬다. 태광그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정치인들까지 가세한다. 술자리의 안주는 태광그룹이 되고 세상은 벌집 쑤신 듯 요란하다. 사법당국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린다. 크든 작든 기업의 비리와 부정이 밝혀지고, 정관계의 관련자들도 색출된다. 그렇지만 사회가 그와 같은 수사의 성과에 만족할지는 미지수이다. 미심쩍은 부분이 상당하다면 사회가 아니면 여의도가 특검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제3단계. 경제위축을 걱정한 법원의 자비로운 판결. 방대한 수사 기록이 법원으로 넘어가고 종국적으로 법원은 고뇌에 찬 판결을 내린다. 재벌 총수를 구속하면 당장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므로 정상을 참작한다. 죄의 경중과 별반 상관없이 판결은 "3년 징역에 5년간 집행 유예"가 내려진다. 재벌 총수는 재판 전에 구속되는 일이 없으니까 시(始)와 종(終)을 통틀어 일상 경영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연루된 정치인은 입지에 따라서 벌을 받고 고위 공무원은 크게 다치지 않는다.
제4단계. 경제 활성화를 위한 특별사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아니면 고등법원, 대법원을 거쳐서 판결이 확정된다. 재벌 총수는 병과(竝科)된 약간액의 벌금을 얼른 납입한다. 그러면 같은 해 말에, 늦어도 다음 해에는 재벌총수와 정치인에 대한 특별 사면이 내려진다. 재벌총수는 모든 혐의에서 벗어나고, 마치 아무일 없었던 듯이 평상으로 되돌아 온다. 그 사이에 불법이건 편법이건 상속이 성사되었고, 착복했던 재산은 합법적으로 본인 혹은 관계인의 소유가 된다. 재계는 사면을 베푼 대통령의 용단을 치하하고, 그 뒤로 언론은 변함없이 재벌총수를 사회의 지도자로 칭송한다. 법조계 일각에서 "그럴 바에야 재판을 왜 하느냐?"고 볼 멘 소리를 하지만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그렇게 불을 보듯 뻔히 내다보이는 일을 두고 왜들 그렇게 요란하게 떠드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자고로 "서일필(鼠一匹)일 줄 알 바에야 태산(泰山)을 명동(鳴動)하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아무런 성과도 없는 일을 두고 국가가 엄청난 인력, 비용.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그야말로 혈세를 내다 버리는 꼴이다.
참고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50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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