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나무랄 일 없는 아들, 야단치지 않는 엄마

안영도 2009. 7. 8. 11:40

善子와 賢母

 

2009년 6월에 순결한 영혼을 가졌다는 안 모씨가 "무슨 팍 도사"라는 TV 잡담 프로에 출연하여 아래 내용으로 말한 것이 인구에 회자된 바 있다.  (전해들었을 뿐이므로 정확성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경우를 가상해도 필자가 할 말은 똑같다.)

 

성장기에 어머니에게 야단 맞은 짓을 하지도 않았거니와 어머니가 꾸짖은 적도 없다.  … 경영자로서는 직원들에게 큰소리한 번 낸 적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칭찬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그게 가능하며, 또한 바람직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우선 개연성을 따져보자.  백만 분의 일 정도의 희귀한 경우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거의 모든 애들은 생각이 짧고, 경험이 적으며, 덤벙거린다.  선악과 안위(安危)에 대한 기준이 확실치 않아서 잘못을 저지르고, 단순하여 정황과 상황을 잘못 생각하고 실패도 한다.  그럴 때면 부모는 꾸짖고 질책하거나 지도하는 것이 정상이다.  조선 시대의 오성과 한음은 소문난 개구장이였고,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러니 우리 같은 범인 네야 말해 무삼할 것인가?

 

 

두번째로 그것이 바람직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 청소년이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킨 대로 곧이 곧대로, 즉 "FM 대로" 살아 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게 바람직할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색다른 일을 해보지 않고, 처음 겪는 일을 시도하지 않으면 창의력은 말살되고 혁신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안씨가 혁신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것은 모범생 생활 덕분이 아니다 (not because of). 그럼에도 불구하고 (but in spite of)  그는 남다른 창의력을 발휘하였고 그것은 타고난 그의 능력 덕분일 뿐이다.  직원들에게 야단치지 않았다는 것은 직원 모두가 안씨가 기대한 범위 안에서 행동했다는 말일 터인데 그렇다면 그 회사는 안씨 개인의 창의력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  그런 기업 현실은 결코 추천할 대상이 아니다.  (공자님 말씀 대로 동행하는 두 사람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서양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룹 전체는 그 중의 최고 현인보다 더욱 현명하다.")

 

안씨의 어머니는 바람직할까? 그것도 그렇지 않다. 유사 이래로 가정교육은 중요시되어 왔다. 가정교육이란 무엇인가? 청소년은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 혹은 그외의 연장자가 조언, 충고, 질책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어머니로서 직무유기(?)가 아니었을까?  필자도, 성장 전후를 통틀어 소위 "범생이"로  알려져 왔는데 나이든  지금와서 내 부모가 좀더 강력하게 이끌어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대체로 부모의 야단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무슨 팍 도사에 출연한 안씨의 경우는 얘기거리로는 나무랄 바 없다.  화제는 드문 것일수록 재미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것 뿐이다.  감탄하거나 칭송할 일도 아니고, 교훈을 얻을 것도 없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딴 세계의 일일 뿐이다.

 

잔소리 덧붙이면, 내가 안씨와 같은 위상의 아들을 두었다면 거의 틀림 없이 그같은 가벼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나무랐을 것이다.  그 행위는 우리 가문의 품위와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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