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멍청한" 어문정책

안영도 2009. 2. 19. 22:52

2009. 2. 20

YDA

본말이 전도된 한국의 어문정책

 

<장면 1> 2009년 2월 4일의 KBS 바른말 고운말 시간에 “유명(幽明)을 달리하다,” “운명(殞命)하다,” “운명(運命)이 달렸다”에 대한 구분 설명이 있었다.

 

<장면 2> 국립국어원의 지침에 따르면 광개토왕비는 즙안(輯安)이 아닌 지안에 세워졌다. 발해(渤海)의 앞바다는 보하이만이었다. 중국에서 태평천국(1851년)을 세운 것은 홍수전(洪秀全)이고, 신해혁명(1911년)의 이단아는 위안스카이(袁世凱)였다. (참, 辛亥革命은 "신해혁명"이라고 읽어도 되나?)

 

<장면 3> 1981년 9월의 독일 바덴바덴에서 사마란치 국제올림픽 위원장은 1988년 올림픽 개최지 투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쎄울 52, 나고야 27”이라고 선언하였다.

 

 

정부의 정책이나 지침에는 일관성과 정합성이 더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문교부(현재의 교육과학기술부) 혹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해 온 어문(語文) 정책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더러 있다. 여기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짚어본다.


한자 교육

        우리 정부는 1948년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그것은 일상의 문장을 한글로 적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것까지 금지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한자를 배웠고, 그래서 대부분의 시민이 기초 한자는 읽을 줄 알았다.  그러다가 1970년에 한자교육이 폐지되었다. 신문에서도 한자의 사용빈도가 줄었고, 마침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지금에 와서는 한자를 읽는 젊은이를 보기 어렵다.

        한자에 대한 무지는 매우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의사소통에 장애가 따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쓰는 어휘의 70%가 한자어이고, 주요 개념은 거의 100%가 한자어이며, 학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용어도 예외없이 한자어이다.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면 정확한 개념이 전달되지 않아서 생활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길래 공자는 "다스림(政)의 출발은 정명(正名)," 즉 개념을 정확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한 바 있다.

        정부가 나서서 굳이 한자를 급하게 폐지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순수 우리말로 된 어휘를 만드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 혹은 국어학계가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려고 체계적으로 시도한 적은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오히려 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예컨대, 대중매체는 국립국어원을 인용하면서 2009년부터 "문맹율"(illiteracy rate)을 "비(非)문해율"로 고쳐 부르고 있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일상의 언어생활을 보면 "사고 다발 지역," "비산 먼지 저감," "무단 투기 엄금"이니 하면서 어려운 한자말을 자랑삼아 만들어 내고 있고, 그 주체는 대체로 정부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글 선각자 외솔 최현배 선생은 "기계화를 위한 한글 풀어쓰기," "한글 전용에 대비한 우리말 용어 짓기" 등에 앞장섰고, 거기에 평생을 바쳤다. 외솔 선생은 국문법(國文法) 대신 “우리 말본”을 체계화하였고, 명사(名詞), 동사(動詞) 등을 각각 "이름씨," "움직씨"라고 불렀다. 한자를 병기하지 않고도 정확하게 의사가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에 비해서, 일석(一石) 이희승 선생을 위시한 “국문법파”는 “문법이 생물학 교과서냐?” “이화여자대학교는 ‘배꽃 큰 여석아이 배움집’이냐?” 는 등으로 외솔 선생의 노력을 빈정대었다.

        필자가 느끼기에 외솔 선생의 방법이 그런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정부는 1970년대에 와서 “말본”을 없애고 “문법”으로 통일하였다 (외솔은 1970년 작고). "한자교육 폐지"라는 또다른 정부 정책과는  분명히 상치(相馳)되는 일이었다. 한자를 폐지하자면 "문법"이 아니라 "말본"을 표준으로 채택해야 마땅하다. 즉, "문법(文法)"이나 "말본"은 괜찮지만 "문법"은 아닌데, 정부가  최악을 선택한 것이다.

        컴퓨터의 보급, 영어 일상화의 진전과 더불어 한자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고, 한자 어휘는 점차 새로운 말로 대체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되려면 수십 년 혹은 한 세기는 족히 걸릴 것이다. 그 사이에는 한자를 모르면 당자(當者)만 손해를 보는 세월이 한 동안 계속될 것이다. 오죽하면 국영방송에서 <장면 1>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는가?

        

중국 이름의 한글 표기

        옛부터 어문정책의 기본은 “어리석은 백성이 날로 쓰기에 편안하게 함”에 있었다. 한자(漢字)는 유사 이래로 우리의 주문자, 최소한 보조문자로서의 지위를 잃은 적이 없다.  그래서 중국 단어이건 일본 단어이건 그것이 한자로 쓰인 이상은 우리 식으로 읽는 것이 맞다. 그래야만 “날로 읽고 기억하며 소통하기에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은 “원지음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중국의 인명과 지명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어문정책이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라면 대부분의 시민이 의아할 것이다.)

 

제4장 제2절 제1항.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동 제2항.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영어 등의 외국어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문자를 쓰기 때문에 가능한 한도 내에서 원지음에 가깝게 한글로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한자어는 엄연히 우리의 보조문자로 표시되어 있어서 우리 나름의 읽는 방법이 있다. 원지음을 존중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다고 "원지인"이 고마와할 리도 없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수없이 많은 중국의 인명과 지명이 한국사에 등장한다. 그것을 지금껏 우리 식으로 읽어 왔다. 그럼에도 억지규정을 만들다 보니 <장면 2>와 같은 코미디가 생기고, 그것은 처음부터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일본어와는 달리 중국어를 원지음으로 읽을 줄 아는 한국인이 많지 않아서, 현실적으로도 중국 인명과 지명을 한글로 적는 방법은 혼란 그 자체일 뿐이다.  (일본어 읽는법 은 우리와 완전히 별개이고, 고유의 일본문자도 있어서 중국어와는 경우가 다르다. 대중매체의 보도에서 일본 이름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읽고 기억하며 소통하기에 도움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외솔의 한글 풀어쓰기를 언급한 바 있는데, 사실 그 방법이 훨씬 편하고 혼란도 적다. 그럼에도 세종대왕께서 굳이  "초성-중성-종성"을 묶어 음절 단위로 적게끔 한글을 창제하신 이유는, 아마도 사농공상 모두가 한자의 음절표기 방식에 익숙했던 탓일 터이다. 그럼에도 국립국어원의 한자어 표기원칙은 3음절의 "원세개"(袁世凱)를 "위안스카이"(5음절), 2음절의 요하(遼河)를 "랴오허"(3음절)로 적으라고 강제한다. 모르긴 몰라도 세종대왕께서 대노하실 것이다: "이런 무식하고 고얀....." 

 

(참고: 외솔선생의 한글풀어쓰기 → ㅗㅣㅅㅗㄹ  ㅅㅓㄴㅅㅐㅇㅡㅣ   ㅎㅏㄴㄱㅡㄹ  ㅍㅜㄹㅓ  ㅆㅡㄱㅣ)

 

한글 이름의 로마자 표기

       우리의 인명(人名)과 지명(地名)을 영문으로 표기하는 것은 1930년대부터 MR 법이 통용되어 왔다. MR 법이란 외솔 선생의 제자인 매쿤(G. McCune)과 하버드 출신의 동양문화 전문가 라이샤워(E. Reischauer)가 공동으로 창안한 표기법으로 음운학 측면에서 매우 정확하다. 그래서 그 당시부터 일본 및 세계에 보급된 한국지도의 지명에는 모두 MR 식이 적용되었다. 그런 까닭에 부산, 인천 등은 Pusan, Inchon 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MR 법은 해방 후인 1948년에 정부가 공식 채택한 바 있으나 그 후에 다른 방법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MR 법으로 되돌려졌다. 정부는 월드컵 직전인 2000년에 또 한 차례 변덕을 부려서 지금 사용되고 있는 “로마자 표기법”으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국립국어원(당시 원장 심재기)은 “로마자 표기를 ‘우리 방식’으로 표준화한다”는 취지를  공표하였다. 외국의 한 잡지(The Economist)는 그 사실을 보도하면서 “한국의 표기법은 언젠가 다시 뒤집힐 것이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후기: 이제 동계 올림픽을 유치했으니 MR 법으로 또 한번  돌아갈지도 모르지..... <광수생각>)

       잘못이 있으면 가급적 빨리 바꾸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음운상으로 훨씬 정확한 MR 법을 단순히 “우리식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개악(改惡)한 것은 무언가 이상하다. 우리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것은 분명 외국인을 위한 것인데 그것을 우리식으로 한다? 그처럼 본말이 전도된 일이 또 있을까? (MR 식이 부수 기호를 쓴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런 문제는 별도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한글을 영어로 표기하는 것은 음운체계의 차이 때문에 어차피 완벽할 수는 없고 가급적 가까운 길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현행의 “로마자 표기법”은 좋은 방법을 두고, “내 고집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예컨대 “부산”은 영어 상용인에게 Busan 보다는 Pusan 으로 들린다. 그래서 MR 법은 Pusan으로 적게 했지만 우리의 제21세기 로마자 표기법은 Busan 으로 쓰게 한다. 원래 한글의 ㅂ 과 영문자 p 는 무성음이고, b 는 유성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음의 b 를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한다. 실제로 부산광역시의 대외 광고문에서 원어민이 Busan 을 발음하는 것은 우리가 발음하는 “부산”과는 사뭇 다르게 들린다. 결국,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b 보다는 p 가 ㅂ 에 가깝다

      가장 희극적인 것은 모음인 ㅓ 와 ㅡ 를 각각 eo 와 eu 로 옮기게 한 일이다. 이들은 전혀 엉뚱한 것으로 실제 발음 사이에는 차이가 매우 크다. 어디서 그런 연계를 찾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필자 나름대로 ㅓ 를 eo 로 쓰라는 것은 착각에 의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서울”은 오래 전부터 Seoul 로 표기해 왔는데, 불어나 영어에서 ou 가 ㅜ 로 발음되는 것에 비추면 "서(Se)-울(oul)"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서(Seo)-울(ul)"로 잘못 판단한 것이다. <장면 3>이 그런 사정을 나타내지 않는가? 그리고, ㅡ를 eu로 쓰는 것은 조선조 마지막 세자 이은이 스스로 "Lee Eun"으로 썼기 때문인가 의심해 본다.

       ㅡ 는 그 소리가 매우 불안정하여 한국인 중에서도 영남사람은 잘 발음하지 못하고, 영어에는 그에 해당하는 소리가 아예 없다. 그런 음운 구성의 기본적 차이 때문에 영어로 정확하게 ㅡ를 적을 방법이 없어서 궁여지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 요컨태 ㅡ는 들릴락 말락 약한 소리인데 그것을 매우 강한 소리가 나는 eu로 적는 것은 맞지 않다. 그나마 o 나 u 로 옮기는 것이 훨씬 낫다.  그렇게 본다면 eo 나 eu 의 e 는 개밥의 도토리처럼 불필요한 요소이다.

       현재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MR 법은 많은 분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근접한 표기법이 블로그의 다른 글인 “내 이름의 영문표기”에 소개되어 있다. 필자로서는 이 방법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쓰는 나의 이름은 나의 이미지와 연관되므로 보다 효과적인 영문표기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지침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