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은 정승판서가 되기 위한 필수과목인가?
어느 나라에서든 임명직 공직자 선정 과정에서 말썽이 일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 2009년 9월의 개각 때에도 다름없었다. 한 일간지가 아래와 같이 전한다.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위장전입”
국회 인사 청문회에 들어간 총리․장관․대법관 후보자 다수가 위장전입의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략)
이러한 모습들은 분명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위장전입뿐만 아니다. 논문 이중게재, 소득 미신고와 탈세 등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러한 단골 메뉴가 다시 나오고 있다. 서민들이 느낄 박탈감과 소외감은 훨씬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을 엄격한 잣대로 털어 내다보면 흠집 없는 사람을 찾기다 쉽지 않다는 점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딜레마이다. (후략) (중앙. 2009. 9. 15)
비슷한 일이 하도 잦다 보니 모두가 둔감해졌다. 그러나 분명 정상은 아니다. 원인을 진단하고 고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네 가지로 가닥을 잡아본다.
사(邪)는 출세의 열쇠. 필자의 어떤 친구가 말한 적이 있다: “사업에 성공하자면 기(欺)는 아니라도 사(詐)는 필요하다.” 곰곰 씹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맑은 물엔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기도 한 터이다. 편의상 외국의 예를 빌리면 록펠러나 카네기 등 존경 받는 사업가들은 도덕가와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악덕기업가(robber baro)로 불리곤 했다. 마사 스튜어트라는 꽤 알려진 미국의 여성 사업가는 부적할 행위로 징역을 살기도 했지만 사업가로는 여전히 "잘 나갔다.”
돈벌이의 그런 이치가 권력과 명예를 쟁취하기 위한 필생의 사업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출세를 위해서는 편법과 권모술수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곧이곧대로 사는 순진한” 사람은 사업에서도 성공하기 어렵고 출세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출세의 순간에 와 있는 공직자 후보가 위장전입 등의 도덕성 흠결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위의 논리가 사실이라면 그것을 고칠 방법은 없다. 사회는 지도자, 즉 출세한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출세를 위한 각종 행위를 비윤리적이거나 부도덕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업성공 및 출세가 당자에 대한 전체 사회가 주는 평가와 보상이라면, 편법과 권모술수는 오히려 권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의 관행은 말로는 비난하면서 행동으로는 높이 평가하는 이중성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공직 담임의 결격 사유. 후보자의 행위가 전적으로 “피할 수도 있었던 도덕적 흠결”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다면 이는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사회 지도층 인사라고 치부할 만한 사람은 거의 모두가 부도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대 해석하면 한국의 지도층 인사는 절대 다수가 부도덕하다. 샘플은 모집단의 성격을 나타내게 마련이고, 수없이 많은 샘플이 동일하다면 모집단의 성격은 거의 확실해진다.
이 관점에서 실낱 같은 희망(silver lining in a cloud)을 보자면, 대다수 지도층 인사는 윤리적이지만 지금까지 후보자에 오른 사람들은 우연히도 비윤리 그룹에서 발탁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제 처방을 생각해 보자. 전자의 경우라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차세대의 올바른 지도자를 기르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윤리도덕 교육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모두 가르칠 자격이 없다. 후자의 경우라면 두 가지 처방이 가능하다. 우연히도 비윤리적 인사를 선정하게 된 것이 찾는 과정의 부실 때문이라면 인사수석실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 결과가 유유상종(類類相從)에서 초래되었다면 윤리의식이 강한 지도자를 뽑으면 해결된다.
괜한 시비. 문제가 되어 온 사안을 열거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탈세, 금전수수, 표절, 압력행사,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등등. 그러나 그런 일들이 “큰일을 위해서는 작은 잘못은 눈감아 주라”는 생활의 지혜에 비추어 용서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일찌기 자사(子思)는 "큰 장수가 될 인물을 달걀 두 개 훔쳐먹은 죄로 내침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 바 있기도 하다.
이 의견이 맞다면 그런 행위에 대한 비난은 야당이나 언론의 과민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눈감을 수 있는 일이니 고칠 이유도 없다.
법치의 문제. 마지막으로 한국의 법치(法治, rule of law)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위에 열거된 부적절 행위는 대부분 실정법에 위반되는 엄연한 범법 행위이다. 그런 일들이 특정 그룹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화되어 있어서 누구나 "지향하는 바"이다. 그것은 한국의 법치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법치의 확립에는 두 가지 방책이 있다. 첫째는 법을 지키기 쉽게 고치는 일이다. 재물에 대한 관심은 사람의 본성이며,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사익추구(self-interest)는 국부(國富)의 원동력으로서 적극 권장해야 할 사안이다. 그렇다면 정상적 사익추구를 억제하는 상당수 실정법은 법률 자체가 문제이다.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로 비난 받는 경우는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법 자체를 고쳐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을 지적하자면 보통사람이 지키기 힘든 법을 많이 만들면 탈법자가 늘고, 그러면 사회전체의 준법정신이 흐려지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법은 가급적 만들지 않는 것이 준법정신의 확립에 도움된다. 그런 점에서 사익추구나 행동자유를 지나치게 업악하는 법은 대체로 악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법치확립의 두 번째 방법은 예외 없는 엄격한 법 집행이다. 한국 사회의 차별적 법 집행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전관예우"라는 말이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고서도 법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차라리 연목구어(緣木求魚)인 것이다. 대부분의 공직자 후보가 각종 비난을 받았지만 막상 형벌을 받은 사람은 없었던 사실은 법 집행 상의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자, 어떨까? 위의 네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우리 사정일까?
<조선일보 2009. 9. 18>
'생활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U2의 보노(Bono)를 아시나요? (0) | 2010.01.03 |
---|---|
대한국민의 대통령 복 (0) | 2009.12.23 |
강도 잡은 용감한 시민과 해고되는 은행원 (0) | 2009.08.25 |
나무랄 일 없는 아들, 야단치지 않는 엄마 (0) | 2009.07.08 |
여론은 언제나 무조건 옳다 (0) | 2009.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