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JD가 법학박사이면 MD는 의학박사인가?

안영도 2009. 2. 13. 09:30

소송만능주의는 법치확립에 효과적이다

 

2009년 3월의 한국에 법학전문대학원이 처음으로 열렸다.

미국의 로스쿨(law school)을 본딴 제도인데

이로써 법조인 양성 및 자격부여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첫째 효과를 꼽자면 아마도 법률의 생활화가 될 듯 싶다.

변호사의 숫자가 늘고, 법조인의 전문성이 향상될 것이다.

일반 시민에게도 소송이 가까와져서 억울한 피해가 줄 것이다.

사회 전체로는 법치가 더욱 확고해 질 것으로 기대해 봄직하다.

 

일상 인간관계의 종류와 범위가 단순했던 옛날에는

상대방의 선의에 의존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굳이 소송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자고(自古) 이래로 송사를 벌이거나 그에 휘말리는 것은 모두가 기피하는 일이었다.

 

현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일상생활이 매우 복잡하여 거래 혹은 접촉하는 사람은 숫자가 많고 성향도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한다.

선의에 기대하기는 커녕, 이용당하지 않을까 우려해야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그래서 대부분의 거래는 이해가 상충하는,  즉 "제로 섬의 게임"이다.

분쟁이 따르기 십상이며 그 합리적 해결을 위해서는 제삼자의 개입이 필요하다.

소송이란 것은 다름아닌 제삼자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과 관련하여 두 가지 생각이 떠 오른다.

 

우선, 그 효과에 관한 것이다.

십여년 전에 작고한 소니(Sony)의 창업자 아키오 모리타(A. Morita)는 1986년의 저서(Made in Japan)에서

"미국에는 변호사가 많고 일본에는 엔지니어가 많다"고 미국의 세태를 조롱한 적이 있다.

어떨까? 그의 말이 옳은지 그런지?

 

아닌게 아니라 미국은 소송만능주의로 악명이 높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차량 접촉사고가 나면 변호사, 그것도 여섯 명이 이내 달려온다"고 빈정대기도 한다. (주1)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이제 우리의 관념도 전통적 소송혐오주의에서 미국식 소송만능주의로 바뀌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공과(功過), 즉 효과와 부작용이 어떨까?

 

미국처럼 소송이 만연하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가 따른다. (주2)

조용히 타협하면 될 일을 많은 시간과 만만찮은 변호사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게는 법치확립을 위해, 크게는 국가경제적으로 매우 비생산적·비효율적이다.  

(Unproductive and inefficient)

 

그렇지만 소송만능주의는 법치확립에 매우 효과적이고, 법치는 국가경제 발전의 바탕이 된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게임이며,

경쟁에서 높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게임의 규칙이 잘 지켜져야 한다.

시장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법치(rule of law)가 필수조건인데

잦은 소송은 돈은 들지만 법치에는 도움이 된다.

 

정리하자면, 소송만능주의를 통해서

국가경제의 효율성은 (efficiency)은 낮아지지만 효과성(effectiveness)은 증진된다. 

둘 중에서 우선순위는 효과성에 있다.

그러므로, 이를 테면 "소송은 장려해야 할 사항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과 관련된 또 한 가지의 감상은

미국의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JD(juris doctor) 학위를 받은 일부 인사들이

"법학박사"를 자칭하는 점에 관한 것이다.

 

무릇 한국어로 "박사"(博士)라고 함은 정해진 연구과정(research)을 거치고

논문(doctoral dissertation)을 써서 인정받은 경우, 즉 PhD (Doctor of Philosophy)에 한정된다.

제대로 된 경우라면, PhD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연구 및 논문 통과에 3~5년에 소비되고

힘이 부족하면 아예 취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2~3년 동안 규정된 학습과정을 마쳤다고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전문대학원(professional school)으로는

경영(MBA, 2년 과정), 법률(JD, 3년 과정), 의술(MD, 4년 과정) 등이 있다.

모두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과목을 들으면 주어지는 것으로 연구 및 논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서 그들 학위는 모두 "전문 석사"일 뿐이다.

 

그런데 법률을 전공하고 (국제) 변호사 자격까지 갖춘 이들이

전문석사(JD)를 "법학박사"라고 자칭하다니… (주3) 

그럼 의사(MD, doctor of medicine)는 모두 의학박사란 말인가?

MBA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를  "경영학 박사"라고 부르면 그건 또 어떻게 말릴 것인가?  

 

(주1) "Everybody sues everybody else."

        "한국의 사고현장에는 레카 차가, 미국의 사고현장에는 변호사가 맨먼저 달려온다."

        차량사고와 관련된 6명의 변호사는 각각 두 운전자, 두 보험사, 두 차량회사를 대표한다.  

 

(주2) 소송이 있고 비용이 발생하면 "없던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내총생산(GDP)이 증대된다."

        미국경제에서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는 소송만능주의이다.

        (이것은 우스개가 아니고 진실이다.)

 

(주3) 한국의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1조는 

        "법 제18조 제1항에 따른 석사학위 및 박사학위는 전문학위로 한다"고 규정하여

         로스쿨 3년 과정을 마치면 "전문석사"임을 밝히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는 JD를 박사학위로 인정하지 않는다. 

 

'생활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My Name is My Brand  (0) 2009.02.19
세계화 시대의 작명법  (0) 2009.02.19
자본시장 통합법과 투자자 보호  (0) 2009.02.04
자유와 안전의 균형 (#1)  (0) 2009.01.30
법치확립의 세 가지 열쇠  (0) 2009.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