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와 벼락
경제적 발전을 위한 처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꼽히는 것은 법치(法治, rule of law)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행동하면서 섞여 살려면
경제적 행위이건 무엇이건 경기의 규칙(rules of game)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있는 규칙은 잘 지켜져야만 한다.
법치를 위해서는 합리적 규칙과 엄격한 집행이 필수적이다.
법치의 확립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열쇠를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1) 탈법은 싹은 애초에 그리고 예외없이 자른다.
2) 인간의 본성에 맞추어 지키기 쉬운 규칙을 만든다. (효과적 규칙)
3) "단속은 느슨하게, 처벌은 무겁게." (효율적 집행)
반칙은 싹부터 잘라야
악법이 무법보다 낫다.
그렇게 보면 법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있는 법이 지켜져야 한다.
준법의 출발은 반칙(反則)의 싹을 처음부터 잘라버리는 것이다.
탈법(脫法)과 위규(違規)는 전염성, 습관성, 중독성이 강하다.
한 번의 탈법을 허용하면
다수가 따라하고 (전염성),
같은 사람이 반복하고 (습관성),
그 정도가 심해진다 (중독성).
운전을 예로 들어, 아무도 갓길을 통행하지 않으면 누구도 엄두를 못낸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만 특별히 바쁘다" 고 반칙을 하면
"나는 특별히 바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속속 뒤따른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서 갓길을 통행해 본 사람은
직장에 지각할 형편만 되어도 갓길을 통행한다.
갓길 통행하는 사람이 신호위반 쯤이야....
그 다음, 적색신호 통행이나 중앙성 침범이나....
못 할 짓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길래 옛부터 바늘도둑은 소도둑이 되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반칙하면 제지할 수가 있지만 숫자가 많아지면 불가능하다.
갓길 통행자가 많아져서 꼬리에 꼬리를 물면 단속할 수가 없다.
교차로에 엉켜 있는 차가 한대 뿐이면 딱지를 끊을 수 있지만 그 숫자가 많으면 가당하지 않다.
경찰선(police line)을 위반하는 시위자가 한 사람뿐이면 연행할 수 있지만 다수면 어찌할 수가 없다.
전염성, 습관성, 중독성은 준법의식을 심각하게 해쳐서
갓길 통행, 교차로 교행, 시위 등등의 일에서 반칙이 횡행하게 된다.
처라리 배심재판. 위의 설명과 연관된 얘기지만 탈법과 위규를 다스림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사법절차에는 흠결이 많아서 제도적으로 탈법을 조장하고 있다.
시급히 고쳐져야 할 일이다.
첫째, 특별사면이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요즈음의 한국에서 그것처럼 준법정신을 해치는 제도는 없다.
소말리아 혹은 르완다라면 모를까 한국처럼 특별사면이 남용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둘째, 유전무죄 혹은 전관예우라는 것이 사라져야 한다.
힘이 있거나 "전관"을 변호사로 고용한 덕분에 탈법자가 처벌받지 않고
도리어 "사회 지도층"을 자처하면서 버젓이 행세하면
보통사람들은 "김이 세서라도"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
반칙 여부에 대한 엄정한 판단은 법치의 필요조건이다.
무엇보다 먼저 특별사면의 남용, 유전무죄, 전관예우를 없애야 하는데,
그일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특별사면은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 상책이다.
한국 정치인의 양식에 비추어 본다면, 제도를 그대로 두고 남용을 막을 방법은 없으니까...
판결은 영미식의 배심단 재판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것이 효율성 측면에서는 손실이지만 재판의 공정성 측면에서는 훨씬 효과적일 테니까....
안전과 자유의 균형
규칙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실익도 없이 엄격한 것이 있는가 하면 단순하지만 효과가 큰 것도 있다.
요컨대 규칙이란 따르기가 쉬워야 지키기가 쉽고 자연히 반칙자가 줄어든다.
사람은 본성에 의해서 누구나 자유를 원하고, 규칙이란 정의에 따라서 자유를 제한한다.
기속(羈束)의 정도가 적을수록 인간본성을 존중하는 것이므로
그런 법규가 지키기 쉽고, 따라서 반칙의 유혹을 적게 받는다.
그런데 한국의 규칙은 안전만 중요시하고 자유에 대한 배려는 매우 약하다 (<보기 1> 참조).
자연히 반칙하는 사람이 많게 되어 있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다산(茶山)은 말한 바 있다:
"탈법자의 숫자가 정도 이상으로 많으면 그것은 법이 잘못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무리한 규칙 중의 하나는 과속 단속 카메라이다.
신문의 독자 투고란을 보고 있으면 월 40,000~100,000원의 벌과금을
경상 생활비로 아예 제쳐 놓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동하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은 과속이 다반사인 것이 사실이다.
불특정 다수가 상시 위반하는 법규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법규의 잘못이다.
영업인이 과속하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특성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주행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주행이 많으면 그만큼 과속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교통량이 갑자기 줄어서 자신도 모르게 과속하기도 하고, 제한속도가 바뀌는 구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속도를 완벽하게 지키려면 표지판과 계기판만 보고 운전할 수밖에 없다.
준법정신이 오히려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과속이 잘못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제삼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조그만 안전"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자유"를 구속할 따름이다.
제삼자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면 모든 자동차의 운행을 중단시켜야 된다.
무고한 시민이 자동차 사고로 다칠 위험은 차동차가 있는 이상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규칙은 가급적 지키기 쉽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비결은 인간 생래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최소한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보기 1> 다니기 편한 곳에 길을 만들라. 신공항고속도로에서
북인천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 두 개의 자동차 전용도로가 엇갈려서 만난다.
인천공항과 김포/강화 사이를 통근하는 사람은 아침과 저녁에 각각 한 번씩 유턴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유턴을 위해서 주행해야 하는 거리가 편도에 1.5㎞ 이다.
당연히 불법 유턴하는 운전자가 많다.
(요즘 같이 기름이 비쌀 때에 유턴만을 위해서 하루에 6㎞씩 달려야 하다니...)
그런데 그 반칙을 막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500n 앞에 유턴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유턴을 하지 못하게 1.5㎞의 철제 중앙분리대를 설치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정답일 것이며, 한국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
가랑비와 벼락
세상의 모든 법칙이 지켜지게 하는 데에는
준법비용(compliance cost)과 집행비용(enforcement expense)이 소요된다.
말할 필요없이, 그런 비용은 적을수록 좋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법은 느슨하게 만들고 집행은 엄하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
합리적 계산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자동차 사고가 비행기 사고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에 더 조심한다.
경험할 일이 거의 없지만 한번 당하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참고: 사고의 위험성 = 사고에 따르는 손실 X 사고 발생 확률)
가랑비와 벼락도 마찬가지이다.
확률로 따져서 가랑비가 초래하는 불쾌감을 겪는 일이 훨씬 많지만 벼락을 더 무서워한다.
잘 만나지는 않지만 한번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반칙행위의 경우에도 똑같다.
발각될 확률이 큰 것보다 발각됐을 때에 벌칙을 크게 하는 것이 더 위협적이다.
그래서 한국의 법체계도 그런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보기 2> 참조).
그것이 준법비용과 집행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법규는 느슨하게, 집행은 엄격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시민법 →보통법)이라서 단시일 내에 이루기는 어렵지만
규칙 등의 하위법부터, 아니면 최소한 정책 철학이라도 그렇게 바꿀 수는 있다.
<보기 2> 공장 설립의 사전 및 사후 규제. 공장의 설립은 지역사회 및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건 관련 법규가 많고 까다롭다.
그런데 그들 법규가 지켜지게 하는 방안에는 사전규제와 사후규제의 두 가지가 있고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 그 둘은 크게 다르다.
한국에서는 시민법적(civil law) 사전규제의 방법이 사용되기 때문에
공장설립을 위해서는 수많은 종류의 서류를 줄잡아 300 페이지 넘게 준비해야 한다.
반면 영미의 보통법(common law) 국가에서는
관련 법규를 준수했고, 하겠다는 신청인의 확약서면 족하다.
법을 지키는 비용(준법비용) 측면에서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집행비용은 어떨까?
300 페이지가 넘는 서류를 제출하게 하는 것은 그것을 확인하겠다는 뜻이며
그럴려면 수많은 공무원이 필요하다.
확약서 한장인 경우라면 애초에 그럴 필요조차 없다.
반칙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으로 낙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반드시 반칙하는 사람이 나온다.
300 페이지 서류 중의 하나에 결격사유가 있었다면 혹은 위조 서류가 끼어 있었다면 어떨까?
가려 내기도 어렵고 설사 나중에 발각되어도 무겁게 처벌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위조서류를 집어내지 못한 공무원의 책임도 있으니까...
결국 벌칙이라고 해야 "가랑비"이다.
확약서만 믿고 허가를 해 주었는데 일부가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떨까?
사회에서의 매장이라는 무거운 처벌이 기다린다.
벌칙은 "벼락"이 되어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
자 이제 제도의 효과성을 생각해보자.
"복잡한 사전규제에 미지근한 처벌"과 "느슨한 허가조건에 추상같은 처벌"의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법치 확립에 도움이 될까?
어느 것의 준법비용과 집행비용이 적을까?
아마도 꼬집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랑비가 무서운가, 벼락이 더 겁나는 가?"
우리는 흔히 한국에는 질서가 잘 지켜지는데 미국에 가면 불안하다고 말한다.
그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뉴욕보다는 서울의 뒷골목이 훨씬 안전하니까...
그런데 세상을 이끌어 가는 법치는 뒷골목의 안전성일까?
아니면, 지도층 혹은 평균적 시민의 준법정신일까?
한국과 미국의 제도 중에서 어느 쪽이 경제발전에 유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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