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ism State
"만수(萬數) 위의 백수(百數)"
2009년이 시작되면서 한국은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회의 소동과 미네르바 사건이 그 핵심이었다.
국회의 소동은 예전에 더러 있었고 대만에서도 가끔 보는 일이다.
망신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에 국한된 얘기로 볼 수도 있다.
"한국의 일류 경제, 삼류 제도"(first-world economy with third-world institutions)는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미네르바 사건은 다르다.
그것이 한국 사회의 실력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니까....
문제의 인사가 인터넷에 글을 실을 때에는
사회 일각으로부터 "경제 대통령"이라는 추앙을 받았고
"만수"를 포함한 내노라하는 전문가들도 절절 매었다.
(참고로 "경제 대통령"은 미국의 그린스펀이 들었던
별명으로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해당인물은 애초부터 전문가가 될 수 없는 이였다.
모를 때의 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접이 가관이었다면
신원이 확인된 바로 다음의 대응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필자의 의견부터 말하자면
그는 결코 경천동지할 정도의 죄를 지은 바 없고,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 좁혀서 네티즌들이 그 소동과 관련되어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책임을 따지자면 사회전체, 특히 지도층과 전문가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국가는 당장 막강한 공권력을 동원하여
힘없고 특별한 죄 없는 "일개 시민"을 압박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만수"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여의도에서는 "시급한 민생법안"을 제쳐놓고 다투었다.
만인이 인정하는 지도인사인 이어령 님과 그를 고문으로 임명한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은
그 사건의 원인으로 "인터넷 문화의 미성숙"을 지목한다.
글쎄, 그것이 인터넷을 나무랄 일인가?
그리고, 인터넷 문화를 누가 어떻게 성숙시킨다는 말인가?
그보다 먼저 중앙일보는 미네르바의 신격화에 기여한 바 없는가?
그런 하찮은 일을 특집 기사로 타루어 온 자체가 문제의 확대에 기여하는 일이 아닌가?
(너무 멀리 나가는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에서 여론은 언제나 옳은 것으로 간주된다.
The public opinon is always right.
인터넷도 엄연히 하나의 사회/community이고 거기서 형성된 종합 의견도 여론이다.
인터넷 여론을 탓하는 것은 "유권자가 투표권을 잘못 행사했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 없다.
"지도층"으로서는 여론을 이끌 수 있을 뿐이지 나무라서는 안된다.)
조선일보 사설은 "前 청와대 경제수석이 스승으로 모신 분"이라는
제목을 달고 아래와 같이 부연한다:
미네르바를 ‘한국 경제의 메시아’로 떠받든 사람들은
입으론 ‘정의’ ‘평등’ ‘박애’ ‘세계주의’를 떠들지만
실제로는 그럴듯한 간판 앞에만 서면
내용은 뜯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냥 넙죽 엎드리고 만다.
지적(知的) 감식안(鑑識眼)은 물론
지적 자주성과 독립성이 결여돼 있는 탓이다. (2009. 1.10)
글쎄, 감식안이 없는 것이 "좌파 지식인"에만 국한된 일인가?
조선일보는 스스로 한국 최고의 정론지라고 자랑하지 않는가?
특히 논설위원들은 고담준론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지 않는가?
그러한 조선일보, 그리고 그들은
파급효과가 그렇게 크고 오랫동안 지속된 미네르바 사건의 와중에서 무엇을 했나?
조선일보는 선정적 보도를 하지 않았고 해당 인물의 신격화에 기여하지 않았나?
요컨대, 조선일보의 "감식안"은 "좌파 지식인"보다 나았던가?
아마추어에 상습적으로 우롱 당하는 전문가 집단
필자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미네르바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가 한 아마추어에게 우롱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이 기본적으로 아마추어 사회이기 때문에 일어났다.
한국사회가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구별하지 못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 때의 소동이 아니고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고, 구조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직접적 책임의 소재를 따지자면
관련 직종에서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과 주요 언론의 전문 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국의 '만수'는 너무 쉽게 '백수'에게 우롱당한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전문가가 되는 길은
메스컴을 타는 일, 특히 방송에 등장하는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금방 밑천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TV에 출연해서 담방에 전문가·명사가 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
현란한(?) 듯한 말 솜씨만 있으면 손쉽게,
영어권 국가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영어 전문가가 되고
간호원 경력 밖에 없는 사람이 성교육 전문가가 된다.
여행 한번으로 중국 전문가가, 주재기자 몇 년에 일본 전문가가 된다
전공도 하지 않았으면서 식생활 전문가, 생활양식(life style) 전문가가 된다.
(검정콩 신드롬을 맨처음 일으킨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는지?)
식견도 없는 사람이 경영 컨설턴트가 되고, 교수 나아가 대학 총장이 된다.
근거도 없으면서 기(氣)니 신바람이니 하면서 전문가 행세를 한다.
두루마기 입고 설치면 동양철학, 서양철학, 한학(漢學), 기학(氣學), 한의학,
경제학, 사회학, 공연예술을 두루 섭렵하는 전문가가 되어 신문·방송이 그를 부르지 못해서 안달이다.
선수생활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야구와 축구의 해설에 나서서
감독의 작전과 선수의 심리, 자세, 능력에 대해서 일일이 시비를 건다.
("A선수 짧은 안타를 치는 팀배팅을 해야 되는데, 욕심을 부려서 삼진을 먹었군요.
저래서는 안되지요.")
여론이 원해서 그런 사람이 전문가처럼 활동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론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뒷받침되는가?
여론을 당장의 시청률과 구독률에만 국한시켜서 평가할 수 있는 일일까?
더구나 한국에는 공론지, 정론지,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기관도 많지 않은가?
(아니, 눈앞의 시청률과 구독률에 집착하는 성숙되지 못한 언론이
다중이 참여하는 인터넷의 성숙도를 나무라다니....)
어쨌건 그런 사람을 평가하고 대접받게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전문가가 아닐까?
그리하여 전문가도 특정 여론의 조성에 기여하는 것 아닌가?
진정한 전문가라면 아마추어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강호(江湖)의 고수(高手)라는 김철중도 이창호 앞에서는 거저 대수롭지 않은 하수(下手)일 뿐이다.
(경제학이 그렇게 깊이 없는 학문은 아니다. 몇년 독학한다고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누가 아랴, 미네르바는 아주 특별했기에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낸사람까지 설득 당했는지...)
요컨대 사이비 전문가가 판치는 것은 명실상부한 전문가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필자로서는 그밖의 다른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좋건 싫건, 한국은 "아마추어리즘 스테이트"(amateurism state)이다.
그래서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진정한 프로페셔널"은 아닌 것이다.
한국이 아마추어 사회라는 점에 대해서 필자는
1999년의 저서 『국가경쟁력 향상의 길』에서 상세하게 다룬 바 있다.
한국인이 아니거나 한국이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진단이 있어야
개선과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판할 뿐이다.
잊어 버리든가, 병인(病因)을 치료하든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백수" (白手) 본인은 실정법에 따라서 처리하면 족하다.
나쁜 감정으로 필요 이상의 무거은 벌을 가하는 것은 모양만 우스꽝스럽다.
"만수(萬洙)와 그의 군단"에 대해서도 좋지 않다.
"관련분야의 식견에 자신 없음"을 모두가 자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네르바에게 시장을 오도한 책임을 묻는다면
기회비용을 빠뜨리고 월드컵의 비용·편익을 분석하여
"축구장에 물 채워라, 태환이 수영하게"라는 소리나 듣게 만든 KDI는 어찌할 것인가?)
"백수"에 대한 사법적 판단 여부와 상관 없이
한국 사회로서는 지금부터 "미네르바"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잘잘못을 따지고 서로 손가락질 해보아야
우리 국가, 정부, 지도층, 언론의 챙피만 키울 뿐이다.
누워서 침뱉기이다.
남은 의미를 굳이 찾자면 유사한 일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이 구조적 잘못에 있기 때문에 손 쉬운 처방은 없다.
한국인이 각자의 직종에서 전문인이 되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안인데
그것은 "교육과 평가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회 제도(institutions)를 바로잡는 일"이 되며,
미네르바 사건에 국한시킬 일은 아니다.
(인터넷 문화는 권유나 훈계를 통해서 성숙되지는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합리적 제도의 도입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제도의 정립은 네티즌이 아니라 지도층의 책임이다.)
무릇, 교훈을 빼면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이다.
잊어 버리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The past (history) is irrelevant except for lessons therefrom.
(Copied from The Economist, Jan. 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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