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우리는 혼례와 장례를 소위 대사(大事)라 하여 중요하게 여겼고,
친지들은 십시일반 부조하여 당사자의 힘을 들어 주었다.
매사 그러하듯 지나침은 모자람 못지 않게 나쁜 법(過猶不及)이며
이는 요즈음의 경조사 문화에도 적용될 듯 싶다.
외국인들은 혼인 축하객들이 신랑신부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혼주와 눈도장만 찍고 돌아가는 것을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유명인사가 혼주인 호텔 식장에는 각계 각층의 고위인사가 모이고
주변에서는 교통체증이 생기기도 한다.
서울 및 지방의 대형병원에 부설된 장례식장의 저녁시간에는
내노라하는 실력자, 기업인, 공무원들이 조문을 와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심지어 나라의 통수권자까지 조문하러 사처(私處)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런 일들이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 합당한 시간 활용인지 의심이 든다.
사실 지도층 인사의 생산성은 나라의 경쟁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우리 지도층이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쓴다면
바로 국가적 손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굳이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행사마다 찾아 다녀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농담삼아 말해지는 "품앗이이기 때문"이라면
차라리 안내장에 온라인 구좌번호를 적어서 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찾아가는 시간 낭비 없이 송금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이른바 "고객위주의 사고"라는 시대조류에도 부합한다.
부조에 십시일반, 상부상조의 의미가 강한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대사를 치룸에 있어서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일수록 손님이 많고
정작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의 일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현실은
경조사의 부조가 더 이상 십시일반하자는 전통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실력자의 경조사에는 성금(誠金)의 범위를 벗어난 거액의 부조금도 많아서
다른 목적이 짐작되기도 한다.
관청이건 기업이건 간부들에게는 판공비라하여
지출해야할 경조사 부조금을 지원해 준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이상하다.
현실에서 부조가 품앗이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일진대
내가 쓰는 비용을 직장에서 지원받는다면
내가 거둔 경조사 부조금은 직장으로 돌려주어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좀 과한 말인지는 모르나 우리의 경조사는 혼주나 상주의
"사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경조사를 빌미로 다른 뜻을 이루고자 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우리의 경조사 문화가 지금처럼 이어져 가야 할까?
신랑신부의 얼굴도 본적이 없는 혼주의 사업관련 인사들이 얼굴 비치자고 찾아와
결혼식장을 도떼기 시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과연 유족들이 장례를 지금처럼 요란하게 치러야 하며,
문상객들은 천릿길도 멀다않고 찾아가야 할 것인가?
그런 일들이 이름 그대로 미풍이고 양속일까?
필자로서는 요란한 경조행사가 시대에 걸맞지 않는 관습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가 아니라면
그런 일들은 그야말로 “가족행사”로 치르는 것이 원래의 목적에 더욱 잘 부합된다.
흉사(凶事)의 경우에는 망자(亡者)를,
경사(慶事)의 경우에는 당사자를 아는 사람만이 참석하여도
행사의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것은 당장 그들에게 금전적․시간적 부담을 줄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만들어
행사를 치르는 가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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