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과 타협
인간의 사고와 행위는 가치 잣대에 의해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내용이라도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선(善)이 될 수가 있고 악(惡)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절충과 타협”도 그와 같은 양면성을 가진 개념이다. 바람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철저히 배척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수용 혹은 배척하는 그 경우를 잘 구분하는 일이다. 필자의 한 가지 생각을 말하자면, 이해의 상충이 있을 때에는 절충이 불가피하고 기본원칙에 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배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국민은 절충과 타협에 매우 서투르다. 그 때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왕왕 정반대로 간다. 예컨대 원칙에는 쉽게 양보하고 타협하지만 이해관계가 부딪히면 자기주장을 끝까지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손쉽게 허무는 원칙.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원칙과 기초질서는 엄정하게 지켜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원칙을 허무는 일에 너무 쉽게 합의하고 그렇다 보니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일종의 덕목이 된다. 언뜻 보면 손해를 입는 사람이 없는 듯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대규모 특별사면이다. 국민화합을 명분으로 탈법과 위규를 저지른 사람을 모두 사(赦)해 주는 것이다. 정치인, 기업인 등의 잘못이 처음 드러나서 야단할 때에는 추상같다가도, 몇 년 사이에 사회 지도층의 지위로 되돌려 보내 준다. 기초질서의 파괴에는 유난히 둔감하여 술취한 사람이 난동을 부려도, 양식 없는 사람이 길가에 오줌을 누어도 모른 척할 뿐이다.
이해의 다툼. 요즈음 와서 더욱 심해진 느낌이지만 사회의 여러 곳에서 이해를 둘러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이해관계란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게 마련인데 아무도, 아무리 작은 손실도 부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절충 없는 이해의 대립은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되는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예컨대 화장장과 같은 소위 “혐오시설”은 어느 지역 주민도 수용하지 않는다. 끝까지 간다면 망자(亡者)를 각자 자기 집 안마당에 묻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지하철을 건설할 때에는 역(驛)이라는 “편의시설”을 모두 자기 마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다가 보니까 우리나라의 많은 지하철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1㎞ 남짓한 거리 마다 역이 하나씩 만들어져서 지하철이 마치 마을버스처럼 운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뀐 세상, 새로운 가치관. 이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생기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변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터이다. 전통적으로 공동선(公同善)을 중요시한 까닭에 “좋은 것이 좋다”는 관념이 뿌리를 내리게 된 반면에, 개발연대 이후에 얻게 된 물질적 풍요의 급격한 신장은 이해관계에 대한 집착을 낳았을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생활환경은 세계화되어 있고, 그 기초질서는 시장경제이다. 그것이 기정사실이라면 우리가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세계라는 더 넓은 공동체에서는 인간관계에 의존한 질서는 존립기반을 상실한다. 시장경제의 기본은 개인의 이익추구와 엄정한 질서 확립(rule of law)이다. 말하자면 (비인간적) 경쟁과 법칙 준수가 현대사회의 기본인 것이다.
흔히 서양을 개인주의 사회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곧 이기주의는 아니다. 남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뿐이지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자기의 이익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 선(線)에서 남과 타협하고 이해관계를 절충할 줄 안다. 그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됨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화장장이나 지하철 사례에서 장기적․거시적 이익을 얻는 길이 무엇인지는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새로운 세상에서는 “이해관계에서는 절충하고 기본원칙은 타협하지 않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적실히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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