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배려할 줄 알기
연세대학교에서 오래 봉직한 송복 교수께서는 한국에서 문사철 교육이 죽어가고 있음을 늘 한탄한다. 사실 그런 까닭에 우리 사회에서는 맛과 멋, 그리고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 개개인은 스스로의 이익만 좇고, 사회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일 뿐"이라는 삭막함으로 충일되어 있다.
작은 예를 들면, 2011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새로운 주소체계가 있다. 길 이름이 그저 "강화동로 1길~ 224 길" 하는 식이다. 아무런 운치도 없고 모두가 기계적이다. 그 뿐 아니라 이름을 붙이는 본래의 목적인 분별기능이 아예 상실된다. "강화동로 137길"에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며, 그것과 "222길"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정부가 수차례 공청회를 거쳤다 하니까, 그런 이름을 붙였을 행정주사만 탓할 일은 아니다.)
필자가 2011년 8월에 처음 들은 "기본 증명서"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요청하는 기관의 설명을 들으면 폐지된 호적등본 대신에 개인신상을 증명하기 위해서 새로 생긴 것이란다. 그런데 세상에 그 이름이 "기본 증명서"라니.... 그렇게도 아이디어가 부족한지 참으로 아쉽다. 그리고 그것은 이름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상실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증명한다는 말인가?
이제 이 글의 본론으로 들어가자. 언필칭 자랑스런 대한민국이지만 그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아예 없는 것이다. 자기만 알고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는 "더불어 사는 사회"는 불가능하다. 필자 나름대로 그런 현상은 우리의 교육제도가 잘못된 것으로 해석하고, 그 중에서도 문사철의 쇠퇴를 꼽는다 . 이제 이와 관련된 최근의 경험을 소개할 터인데, 미리 말하지만 등장인물을 나무랄 수는 없고 그저 잘못된 교육 시스템을 탓할 뿐이다.
2011년 8월 23일에 필자는 이를테면 고급인력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쉬는 시간에 모임장소 한켠의 조그만 다과 테이블로 갔다. 각종 음료와 과자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필자는 커피를 원했다. 봉지 커피 하나를 종이컵에 쏟고 보니 주전자(커피 포트)의 물이 뜨겁지 않았다. 그래서 스위치를 눌러 두고 다른 사람에 방해되지 않으려 몇발짝 물러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텅비었던 다과 테이블로 30대로 보이는 여자교수가 다가 왔다. 필자와 취향이 비슷했는지 커피 주전자 곁에 서 한참을 대기하더니 물이 끓자 거피 컵에 부었다. 그 때 마침 40대로 보이는 다른 여자교수가 그리로 다가 왔다. 그리고 그 둘은 테이블을 막고 서서 한참이나 말하자면 "수다를 떨었다." (하기야 고담준론이었는지도 모르지.)
아마도 3~4분은 족히 지났으리라. 어떤 남자 참석자가 다과 테이블로 다가 오자 그 두 여자교수는 그제서야 "아이쿠 미안합니다" 하면서 접근로를 열어 주었다. (필자는 새삼 그 남자에게 감사한다. 필자의 인내에 한계가 올 찰나였기 때문에....)
이것이 대한국민의 현실이다. 그 두 여교수의 눈에는 커피겁을 들고 하릴없이 서 있는 필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남의 입장이 어떨지, 자신의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지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여교수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제발이지 남을 배려하면서 예절을 지킵시다"라는 글을 쓸 것이다. 마치 필자가 제 분수를 모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남의 입장에 둔감함은 한국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으뜸가는 일 중의 하나이다. 평균적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거의 언제나 남의 편의는 안중에도 없다. 결과는 시민 모두에게 짜증나고 불편한 삶이 될 뿐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면에서 한국사회를 통틀어 가장 앞서야 할 "여자 교수"들의 인식이 그 정도이니 누구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건 성차별이 아닙니다. 원래 여자가 더 감성에 예민합니다.)
이제 해결방안을 말해야 할 터인데, 그것은 도덕윤리 교육으로는 부족하다. 도덕교육이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다 포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을 배려하는 일은 우리의 모든 행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성과 사회의 문화로 자리잡아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바람직한 인성과 문화의 개발은 "문사철 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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