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위험 관리: 사례연구 (1)
<사례 개요>
비영리 ㉮재단은 2007년 2월에 ⓐ은행의 주선(周旋, brokering)에 따라서 “만기가 따로 정해지지 않은 해외 부동산 전문 HIFI 펀드”에 $10백만을 투자하였다. “해외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유행이며, 그것은 국내보다 높은 투자수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라는 은행 측의 설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당시에 ⓐ은행은 “달러 펀드에 가입하면 원리금에 대한 외환위험이 발생하는데, 선도환(forward exchange) 거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권유하였다. 별다른 재무 지식이 없었던 ㉮재단의 총무담당 직원은 그 말을 좇아서 “ⓐ은행에 $10백만을 매도하는 1년 만기의 선도환 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의 현물환율은 ₩930/$, 선도환율은 ₩940/$ 이었다.
HIFI의 수익률이 평균은 되리라 믿으면서 ㉮재단 총무직원은 그 뒤의 1년 동안을 무심하게 보냈다. 그런데 2008년 2월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은행으로부터 선도환 계약에서 손실이 발생했으므로 차액을 변상하라는 것이었다. 선도환율이 ₩940/$인데 현물 “전신환 매도율”이 ₩965/$로 됐으므로 1달러당 ₩25의 차이(₩965/$ - ₩940/$), 총액 ₩250백만의 손실이 발생했던 것이다.
총무직원으로서는 그 차액을 상환할 수밖에 없었고, 재단이라는 성격상 그 절차를 밟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사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잠재해 있었는데, 미국 부동산 경기의 붕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HIFI 펀드의 평가액은 $7백만으로 줄어든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손실이 현실화(realization)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점은 그런대로 소리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환차손을 정산하면서 ⓐ은행과 다시금 1년 만기의 선도환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는데 선도환 매도의 기준 환율은 ₩970/$로 정하고 상정원금(notional principal)은 ⓐ은행의 권유에 따라서 최초의 원금인 ₩10백만을 유지하였다.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몰아닥친 것은 2009년 2월 두 번째 선물환 계약의 만기 때였다. 만기일을 2주일 앞두고, HIFI 평가액은 $6백만 수준에 머무르고, 현물환율은 1달러당 1,400원을 상회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두고 2008년 3월에 새로 부임한 총무본부장 X씨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환율, 국제금융, 금융시장에 대해서 공부도 해보지만 나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온갖 생각이 드는 와중에서 X씨는 아래의 대안에 대해서 짚어본다:
① HIFI 펀드와 선도환 계약을 모두 청산한다. 얼추 계산해 보니 ₩90억이 넘었던 자산이 ₩30~40억으로 끝난다.
② 펀드는 그대로 두고 선도환은 청산한다. 이 경우에 $6백만의 펀드는 남지만 선도환 손실 ₩50억 내외를 별도로 물어주어야 한다. (남는 금액은 ①의 경우와 유사함.)
③ 펀드는 그대로 두되, $10백만의 선도환 계약은 무정산 연장(historic rollover)을 요청해 본다. 이 경우에는 $6백만의 펀드, ₩50억 상당의 환차손에 대한 사실상의 차입금, $10백만의 매도 선도환 계약이 남는다.
④ 펀드는 그대로 두고, $10백만의 선도환계약에 대해서는 ⓐ은행을 상대로 “채무 부존재 소송”을 제기한다. HIFI 펀드에 대한 위험관리를 위해서는 별도로 제삼의 ⓑ은행과 $6백만 혹은 $10백만의 선도환 계약을 체결한다.
여기서 ㉮재단의 재무관리 체계를 잠시 소개한다. ㉮재단은 적지 않은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상당한 현금성 자산도 유지하고 있지만 조직의 성격상 펀드 매니저는커녕 재무전담 직원도 없다. 2년 임기로 순환 보임되는 총무본부장 아래에서 수명의 총무담당 직원이 모든 자산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평가>
외환위험의 성격. ㉮재단은 한국 법인이므로 자산과 부채를 모두 ₩화로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통화다변화를 통한 위험분산이라는 측면에서 일부 자산을 $화로 가져갈 수도 있다. 이를 경우에, 구체적으로 $표시 HIFI 펀드와 같은 투자에는 두 가지 위험요소가 섞여 있는데 하나는 “$표시 투자수익률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 환율위험”이다. 이를 두고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째, 펀드의 수익률 불확실성도 싫고, 환율위험도 싫은 경우라면, $표시 펀드에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둘째, HIFI 펀드의 수익률 위험은 투자다변화 측면에서 감내하기로 하고, 환율위험만 제거(hedge)하고자 하는 경우이다. 불행히도 현실적으로 부동산과 같은 장기투자에 따르는 환율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없다.
선도환 거래와 같은 파생상품은 1년 미만의 단기 위험에는 적합하지만 HIFI와 같이 만기일이 따로 없는 장기상품에 대해서는 적당하지 않다. 우선,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펀드에 자금은 묶여 있는데 매 1년마다 선도환 손익을 정산해야 한다는 기술적 문제가 있다. 더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장기 선도환, 특히 ₩화와 같은 불환통화(non-convertible currency)의 경우에는 부수되는 거래비용이 매우 커서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외화표시 장기 자산/ 부채에 따르는 환율위험은 소득위험 혹은 전략적 위험이 되는데 이를 관리하자면 전략적 헤지의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장기 위험에 단기 관리수단을 적용하는 것은 이를테면 목적과 수단간의 부정합성(mismatch)을 초래하게 된다. 별도의 “환율과 기업경영” 참조. )
셋째, 투자수익률 위험과 환율위험을 모두 감내하면서 투자자산 다변화 측면에서 HIFI 펀드에 투자하고, 선도환 거래는 생략하는 방법이다. 이는 위험분산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범위 내에서 충분히 선택해 볼 수 있는 방안이다.
종합해 보면, ㉮재단의 경우에, 2007년 2월의 HIFI 투자는 나무랄 것이 없으나 선도환 계약은 다소 성급했다고 할 수 있다.
선도환 거래의 연장(Rollover). 선도환 거래가 외환노출에 대한 위험 헤지 목적이었던 만큼 연장할 경우의 원본금액은 연장 당시의 펀드 평가액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재단이 2008년 2월에 선도환 계약을 다시 체결하면서 상정원금을 $7백만이 아닌 $10백만으로 정한 것은 일종의 과잉 헤지(over-hedge)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차액 $3백만에 대한 선도환 매도는 투기행위(speculation)에 지나지 않아서, 필자가 보기로는 “금기사항”이다. (별도의 “투기의 종착점, 그리고 KIKO” 참조)
2009년 2월 제2차 만기 시에 ⓐ은행과 선도환 계약을 연장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사정이 허락하는 한 ₩50억 내외에 이를 환차손을 정산하는 것이 유리하고 상정원금은 연장당시의 펀드 평가금액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옳다. 환차손을 감안하여 선도환율을 정하는 소위 “정산 없는 연장” (historic rollover)은 적용되는 이자율이나 환율 측면에서 고객에게 불리할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소송 가능성. 모든 계약이 ㉮재단과 ⓐ은행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이상 ㉮재단이 승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사실관계의 확인에서 “ⓐ은행이 국제금융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재단에게 계약에 따르는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오도(misleading)한 경우”라면 법원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수도 있다.
'환율 및 외환위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KIKO 거래로 이득을 본 사람이 없는 이유 (0) | 2010.09.24 |
---|---|
재무위험 관리 (0) | 2009.02.17 |
환율과 기업경영 (0) | 2009.02.17 |
환율, 외환위험: 이렇게 대처하세요 (0) | 2009.01.16 |
금융투기의 종착점 (0) | 2008.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