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는 꿈도 꾸지 말라
결론을 먼저 말하면
개인 자격으로든 전문 딜러로든 금융투기는 애초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은행 등의 투자기관에는 단기차익을 노리고 외환, 주식, 채권 등을 매매하는 전문 딜러가 있다.
한국에도 1997년부터 선물거래소가 설립되어 개인 자격으로 금융투기 거래가 활발하다.
그것은 딜러에게 혹은 개인에게 유혹이다: 투기를 해보라고…
그런데 일단 투기성 거래에 손을 대면 그 종착점은 거의 틀림없이 대형사고가 된다.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주변에 투기를 통해서 성공한 사람의 무용담이 흔히 들린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런 성공사례는 중간보고일 때가 태반이고 후일담은 알려지지도 않는다.
떠들었던 사람도 종국적으로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노름으로 재미를 보았다는 사람의 뒤끝이 어땠는지를 생각하면 쉬 짐작할 수 있다.
둘째, 투기와 관련해서도 10:90의 법칙이 성립한다.
주식투자로 성공한 한 사람(10%) 뒤에는 크게 손해를 본 아홉 사람(90%)이 있다.
다른 형태의 금융투기도 마찬가지이다.
실패한 9명의 경과(經過)는 알려지지 않고 성공한 1인의 소리만 들리니
왠만하면 재미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착각일 뿐이다.
이제 처음의 화두(話頭)로 돌아가자.
투기란 애초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는 점을 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풀어보자.
투기와 투자
일반적으로 투기(speculation)와 투자(investment)를 구분해서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학술적으로 정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편의상 나누어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쪽이든 "당장 소비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포기하는 대신에
미래에 더 큰 것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굳이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자면 당해 행위에 부수하는
"위험의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목표로 삼는 "미래의 더 큰 효용"이라는 것은
그저 기대하는 것일 뿐이지 확실한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uncertainty) 혹은 "변동 가능성"(volatility)을
경제학에서는 "위험"(risk)이라고 부른다.
투기이건 투자이건 결과가 확실치 않은 이상 위험이 수반된다.
문제는 그 위험, 즉 불확실성의 범위와 손실의 정도이다.
만약 어떤 행위의 결과가 일정한 범위 이내로 예상이 가능하고
또 최악의 경우를 행위자가 금전적으로 감내할 수 있으면 투자라(投資)고 부름직하다.
그러면 그런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에는 투기(投機)라는 이름붙게 된다.
말하자면 투기(speculation)는 "무모한 투자"(reckless betting)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왕왕 "부통산 투기"라고 부르는데
그 용어에는 이데올로기가 배어 있다.
긴 세월을 두고 보았을 때 토지만큼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는 없다.
그러므로 부동산 투자를 싸잡아 "투기"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2008년 12월에 화재가 된 적이 있는 것처럼
현금 3억원을 바탕으로 대출을 일으켜서 아파트 70채를 사는 것의 명백히 투기이다.
아파트 가격이 조금 하락하거나 유동성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그 행위자는 상환불능에 빠지기 때문이다.
KIKO의 경우. 북경에서 메달을 딴 한국 선수,
그리고 미국의 Barack Obama를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2008년은 우울한 시간(a dismal year)이었다.
그 와중에서 한국의 많은 중소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KIKO 사건이었다.
몇 백의 기업이 연루되어 도합 몇 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KIKO라는 금융상품에 하자가 있다면
그것은 "제조물 배상 책임"(product liability) 개념에 준하여
판매한 금융기관의 책임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KIKO는 통화옵션이 이리저리 얽힌 상품이라서
그것의 하자 여부를 판정하자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머튼(Robert Merton) 과 숄즈(Myron Scholes)에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금융기관의 책임을 따질 수 있는 부분은
수요자에게 상품의 위험성을 설명했는지 여부이다.
일이 잘 풀릴 때의 혜택만 말해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의 손실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허벅지에 쏟아서 다친 사람이 재판에서 이겼고
그래서 지금은 컵에 "커피가 뜨거우니 주의하라"는 문귀가 써져 있음을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간다.
사전 경고가 있었으면 쏟은 사람의 잘못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공급자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KIKO 사건에 대해서 2008년말 현재에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잘잘못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서 그 얘기는 이만 줄인다.
(참 "아니러니컬" 한 것은
옵션 모델을 창안하여 노벨상은 받은 위의 두 경제학자가
1998년에 미국을 떠들석하게 만든
Long-Term Capital Management 라는 헤지펀드의 배후에 있었다는 점이다.)
금융투기의 종착역은 亡身
서론이 좀 길었지만
여기서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누구라도 투기에 나서지 말라는 점이다.
특히 선도환, 통화선물, 상품선물 등의 금융상품을 대상으로 한 투기, 즉 "금융투기"는
한마디로 "시한 핵폭탄"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터지고
일단 터지면 개인은 패가망신하고, 기업은 존립의 기로에 서게 된다.
2008년초에 프랑스 최대의 은행인 SG에서 한 사람의 딜러(J. Kerviel)가
투기를 저질러 짧은 기간에 7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그 사건은 현재까지 밝혀진 중에서는 인류 역사상의 기록이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즉 한 사람의 투기자가 10억달러, 우리 돈으로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끼친
사례만 따져도 무수히 많이 알려져 있고, 잊을 만하면 터진다.
(이 분야의 古典으로 1995년에 233년 전통의 Barings Bank를 파산으로 이끈
N. Leeson의 14억 달러 손실이 있다,)
그런 사정이 한국이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더구나 한국인은 생사를 건 투기를 예사로 감행하고, 그것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외국에서는 경마나 카지노가 레저이지만 한국에서는 본격적 도박이 된다.
[2000년의 강원랜드 개장 이후 8년 남짓한 사이에
카지노 재산 탕진 후에 자살한 사람이 25명이나 된다.
1999년에 처음 선보인 한국 선물시장은 그 역사가 짧지만
"Kospi 200 지수 옵션"의 거래량은 세계 최대이고
제2위와의 격차는 무려 10배에 이른다 (2007년 현재).]
기업은 투기가 아니라 본업을 통해서 이윤을 창출해야 함은
교과서적 얘기이지만 틀림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공자님 말씀보다는
투기의 종착역은 불행뿐임을 설명하고자 한다.
일찌기 Peter Drucker는 기업에게 투기는 금기사항이라고 적시하면서
"작은 성공을 거둔 딜러가 너무 똑똑해져서 큰 사고를 저지른다"고 부연한 바 있다.
외환 딜러 사이에 전해오는 경험법칙에 따르면
"10만 달러 버는데 일년이 걸리지만 1백만 달러를 잃는 데는 하루면 족하다."
("A good foreign exchange trader can earn $100,000 in a year---and lose $1,000,000 in a day."
Quoted from R.Z. Aliber. The International Money Game, 1987, p.61)
요컨대 종국적으로 투기꾼은 큰 손실을 입게 되어 있다.
왜 그럴까?
확률적으로 따지면 50% : 50%이니
눈감고 투자해도 절반은 성공할 것이 아닌가?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효율적 시장의 가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환율이건, 선물가격이건, 주가이건 승패의 확률이 반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눈을 감고 투자하면 "반은 따고 반은 잃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투기꾼도 "눈을 감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심히 나름대로의 계산도 하지만, 감정이 개재된다.
감정, 즉 인간심리 때문에 투기는 결코 50% : 50%의 게임이 되지 않으며
95% : 5% 정도로 손실의 가능성이 엄청나게 크다.
관련된 심리를 설명하는 용어가 "상실의 혐오"(loss aversion)인데
그 개념을 처음 밝혀낸 사람(D. Kahneman)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상실의 혐오는 인간 누구에게나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에 상실감이 더 큰 현상"을 지칭한다. .
예컨대 외가에서 새배돈 1만원을 받은 아이가
집에 돌아오다가 그 돈을 잃어 버린 경우를 생각해 보라.
온갖 즐거웠던 상상이 다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 경우에 얻은 기쁨보다 잃은 상실감이 큼을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상실의 혐오와 투기 메커니즘>
이제 "상실의 혐오"라는 인간 공통의 심리가
어떻게 투기의 결말이 불행하게 되도록 이끄는지를 살펴보자.
<보기 1> 투기의 시작. 우리의 대표선수인 전문투기꾼 A와 B가 있다. A는 선물시장에 분수에 넘치는 큰 돈을 걸고 있는 개인이고, B는 어쩌다가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거래를 시작하게된 SG은행의 Kervial 과 같은 전문 딜러이다.
우연한 기회에 A와 B는 1백만 달러($1,000,000)을 샀는데 살 때의 환율이 ₩1,000/$이었고 팔 때의 환율이 1,100이었다. 그리하여 간단하게 1억원(₩100,000,000)의 이익을 확보하였다.
참고로, 애초에 1백만 달러를 사자면 10억원의 밑천이 있어야 하지만 전문적인 꾼에게는 0~10% 의 작은 돈("margin"이라고 불리는 seed money)만 있어도 참여할 길이 열린다. |
이제부터 투기꾼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생각해 보자.
<경우 1-1> A나 B가 거기서 투기를 중단한다면 1억원의 가외소득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현명한 사람이다.
A는 재산이 불어났고,
B는 직장에서 크게 칭찬을 들었다.
<경우 1-2> 그런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한번 맛을 들인 투기의 매력을 잊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보통사람(凡人)에 불과한 A와 B는
재미를 붙여서 투기를 계속하였고 어쩌다가 "재수가 없어서" 손실을 입게 되었다.
환율의 움직임이 상하 각각 50%의 확률을 가졌다고 가정한다면,
투기를 계속하는 이상에는 순손실이 발생하는 순간은 반드시 생긴다.
<보기 2> 투기 규모의 확대. 불의의 손실을 입은 A (혹은 B)는 약각 초조해졌고 단번에 만회하기 위해서 이제는 10백만 달러를 샀고, 적용된 환율은 ₩1,200/$이었다. 여기서, 10백만 달러는 개인인 A의 자산 규모에 비해 감내하기 어려운 큰 규모이고, B의 재량권("허용된 포지션")을 훨씬 벗어난다. |
<경우 2-1> 달러 매입 1주일 후에 환율이 1,250 이 되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까?
거의 틀림없이 달러를 되팔 것이고
그러면 5억 원의 이익이 생긴다.
그런데 왜 "틀림없이" 달러를 되팔게 될까?
바로 아래와 같은 심리이다.
"5억원이 내 주머니에 있는데 내일 환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만에 하나 환율이 거꾸로 움직여 5억원이 날아간다면 그것은 너무나 아프다."
팔고난 다음에도 달러는 강세를 유지해서 1,400까지 오른다.
A와 B는 마치 손에 잡힌 15억원의 이익을 날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고
다음에는 좀 더 참을성을 갖자고 다짐한다.
<경우 2-2> 달러 매입 1주일 이후에 환율이 1,150 이 되었다.
당장 계산해 보니 5억원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A 그가 가진 아파트가 날아갈 것 같고, B의 입장에서는 해고통지서가 눈앞에 보인다.
A와 B에게 아파트나 직장을 잃는 아픔은 너무 절실하다.
결국 A도 B도 손절매(損切賣, stop loss)를 실행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러는 사이에 야속하게도 환율은 계속 불리하게 움직여 급기야 1,000이 되었다.
손실의 금액이 20억 원이 되어 이제는 어찌해 볼 수조차 없다.
오직 한가지 길이 있다면 투기 액수를 10배쯤 키워서 단숨에 회복하기를 기대하는 일이다.
이쯤 설명하면 아마도 결말이 눈에 보일 것이다.
이제 "상실의 혐오"라는 심리현상이 초래하는 귀결을 정리해보자.
투기하는 사람은 "차익은 조기실현하고 차손은 확대되게 버려두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공통적 심리가 "말로 주고 되는 받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거기까지의 효과는 상실의 혐오라는 심리현상에 고유한 것이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손실의 양이 커질면 자포자기에 빠져서 건전한 판단력조차 잃게 되는 것이
다음 단계의 공통적 심리현상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투기자가 "이판사판, 더블 베팅, quadruple betting...."으로 나아갈 것이다.
(투기자가 자포자기의 상태로 진행해갈 때에 이득을 보는 당사자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래 수수료를 챙기는 상업은행, 투자은행 등과 같은 브로커[周旋人/broker]이다.
그래서 브로커 사회에는
"고객이 돈을 잃을수록 우리는 돈을 번다"는
매우 비인간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금언[金言/axiom]이 통한다.)
요컨대, 투기는 대형사고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종착점은 이혼 하니면 해고 ?
현실적으로 대형사고를 일으킨 전문 딜러는 모두 해고되었고
일부는 감방으로 보내졌다.
어쨌거나 이래저래 망신뿐이다.
2008년 중에 전설처럼 알려진 얘기로
"외국의 어떤 투기꾼이 몇 십억 달러를 챙긴 다음에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있다.
그런 일이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그 확률은 "2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을 하는 순간
그 클럽에 벼락이 치는 것"보다 더욱 희귀한 일이다.
경제학의 기초적 가정과는 달리 인간은 냉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못하다.
투기를 해서 돈을 벌려면 차분하고 면밀한 대응이 필요한데
인간은 그 필요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투기는 애초부터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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