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0. 9. 25)
표제의 링크로 소개하는 기사처럼, 많은 분들이 키코 거래에서 돈 딴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중소기업이 입은 피해가 모두 합하여 수조원에 이를 정도로 커니까 반대편의 수혜자를 찾아내어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할 수 있으리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파생상품 거래는 제로섬 게임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사실은 아래와 같다.
1) "외환위험 관리" 목적의 파생상품 거래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키코라는 상품은 복잡하지만 개발한 목적은 엄연히 "외환위험 관리"이다. 키코를 포함한 모든 파생상품은 그 기본 도구인 선도거래(forward trade)를 응용하여 만든 것인데 후자를 정확하게 알면 파생상품의 핵심은 이해한 셈이 된다.
선도거래는 "돈의 시간가치가 다르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1년 뒤의 1,000원은 오늘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 그 가치가 다름을 이자율로써 표시하는데, 예컨대, 이자율이 5% PA라고 한다면 1년 후에는 1,050원이 돼야 오늘의 1,000원과 본전이 된다. 오늘 1,000원을 빌려주고 1년 뒤에는 1,050원을 받아야 공정한 거래이다. 그런 원리에서 출발하여 현물환율로부터 선도환율이 산정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글(환율, 외환위험: 이렇게 대처하세요)에 소개되어 있다.
이제 선도거래의 당사자를 생각해 보자. 은행은 주선인(브로커)에 불과하니까, 달러를 선도환으로 판 사람이 있고 산 사람이 있다. 당사자의 이해득실을 따지면 은행은 거간 수수료를 챙기는데 그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런데 선도거래의 목적이 외환위험 관리에 있었다면 매도인이나 매수인이나 모두 그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했을 뿐으로, 거래이행 당시의 현물환율이 어떻던 손실이란 개념은 발생하지 않는다. 금전의 대차 측면에서 생각하면 선도환의 매도인과 매수인은 위에서 설명한 이자를 수수하게 되지만 그것은 공정한 거래일 뿐으로 손익과는 무관하다.
뒤집어 생각해 볼 때에, 만약에 어떤이가 "선도환 거래로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투기목적으로 선도거래를 했다고 자백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투기는 선도거래를 포함한 모든 파생상품의 제정 취지에 어긋난다.
(필자가 회사원 시절인 1982년에 처음으로 선도환 거래가 도입됐는데 당시의 외환관리법상으로 투기 목적의 선도환 거래는 불법이었다. 지금의 외환법에 그런 규정은 없겠지만 투기는 사행 행위나 다름없으므로 적법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시 키코로 돌아오면 키코 거래로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자체는 그 목적이 불순함을 자인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
다만, 키코라는 상품의 설계에 하자가 있어서 중개인인 은행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면, 상품 매수인이 부당한 손실을 본 셈이 된다. 그 점에 대해서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불려와서 법정 증언을 하고 있다 하는바 필자가 섯불리 말할 바는 아니다. (선도거래의 발전형인 옵션만 정확하게 이해하여도 KIKO의 공정성 여부는 판단할 수 있을 터인데, 수많은 자칭 금융공학자들은 뭘하고 있는지?)
2) 은행 영업의 기본원리는 보험과 같다.
은행의 기본 입장이 중간상(dealer)보다는 주선인(broker)인 점은 맞지만 매매거래의 형태는 결코 1:1 연결이 아니다. 대체로 보면 한 쪽(KIKO의 판매)이 소매거래이고, 다른 한 쪽((KIKO 대응 거래)은 도매거래이며 거래 시간대가 일정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반대거래를 찾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다. 마치 수많은 불특정 화재보험 가입자로부터 보험료를 받아서 한 사람의 특정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과 같아서 상호연결은 당초에 불가능하다.
더구나 KIKO를 판매한 은행이 실시하는 반대거래는 KIKO의 형태이기보다는 선도, 선물, 옵션, 스와프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KIKO는 시장이 작아서 상대방을 찾기 어렵지만 선도거래 등의 시장은 사실상 무한하여 언제라도 거래가 가능하다. 그렇게 보면 1:1 연결이란 당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3) "반대거래 운운"은 마녀 사냥이다.
지금의 시비거리는 "KiKO는 은행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된 결격 상품"이라는 점에 있다. 말하자면 생산물 책임(product liability)에 관한 것이다. 생산물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완제품 공급업자인 은행에 국한될 뿐으로, 그것을 다른 어떤 당사자에게도 확대할 수 없다. 부당 이득이 있었다면 은행이 그것을 제삼자인 반대거래 상대방에게 양도했을 리도 만무하다. 그러므로 "반대 거래 확인 운운"은 기껐해야 마녀사냥에 지나지 않는다.
'환율 및 외환위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ewoo Corporation in Written Options (0) | 2015.04.21 |
---|---|
Foreign Exchange Management at Daewoo Corporation (0) | 2015.04.21 |
재무위험 관리 (0) | 2009.02.17 |
환율과 기업경영 (0) | 2009.02.17 |
해외 펀드 투자와 선물환 헤지 (0) | 2009.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