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큰 관심을 끈다. 아래의 글은 2008. 10. 9.의 한 일간신문의 사설에서 인용한 것이다.
일본이 통산 16명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동안 물리학상 7명, 화학상 5명 등 특히 과학 분야에서 12명의 수상자를 냈다. 이 같은 성과는 두터운 연구층과 실험 인프라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큰 몫을 했다.
일본은 2001년 제2차 과학기술기본계획 정책 목표의 하나를 ‘국제적인 과학상의 수상자를 구미 주요국 수준으로 배출할 것(50년간 노벨상 수상자 30명 정도)’으로 설정하고 집중적인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원래 평화상은 좀 다르니까 논외로 치고...) <참고: 위의 인용문과는 달리 일본의 과학부문 노벨상은 13개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흔히 13:0 이라고 비유한다.>
반면 지난 8월의 올림픽 성적은 금메달 기준으로 한국은 13개, 일본은 9개였다. 폐막식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던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올림픽 메달과 노벨상에서의 양국의 차이가 우연일까, 필연일까? 필연이라면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과 체육에 대한 대접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
사실 그렇다. 멀리 88 올림픽은 제쳐두고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되돌아 보자. 유치가 결정된 1996년부터 2002년까지 기나긴 6년의 세월 동안 온나라의 관심은 "성공적 월드컵 개최"였다. 약 8조원 가량의 금전적 비용이 투입되고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일선 공무원까지 최우선적인 관심을 쏟았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고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히딩크라는 외국인이 국가적 영웅이 된 것, 축구 선수들이 병역을 면제 받은 것, 휑뎅그레 볼품도 쓸모도 없는 10개의 축구 전용구장 정도가 아닐까? 확실한 것은 국가위신이 높아지지도, 한국 제품이 더 팔리지도, 관광객이 더 늘지도, 축구성적이 올라가지도, 국민의 체력이 향상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자세한 사항은 『월드컵, 그 환희의 뒤끝 』참조)
무릇 어떤 사업이건 그 평가에 있어서는 기회비용을 반드시 감안하여야 한다. 월드컵 개최와 관련하여 우리가 치런 가장 비싼 댓가는 아무래도 온 국민이 쏟아부은 관심(attention), 즉 심혈(心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기울일 수 있는 심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월드컵에 집중하면 다른 데는 소홀할 수 밖에 없다. 혹시 과학기술이 그 희생은 아니었을까?
쉬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예컨대, 월드컵에 투자한 유무형의 비용과 국민의 관심을 과학기술에 돌렸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이 되고, 머지않은 장래에 노벨상 수상자가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런 일은 21세기에 와서도 전국의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국제 체육행사를 유치하고, 사회 지도층은 체육에 대한 지원이 적어서 걱정인 점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은 거저 양념으로 거론될 뿐으로 말치레(lip service)를 벗어나지 못한다. (참고: 국제행사는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 지원해 왔기 때문에 개별 지자체로서는 크게 남는 장사가 된다.)
왜 우리는 아직도 개발연대 식의 체육행사 식탐(食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벨상은 계속 남의 일로 남아 있어야 할까? 안타까울 뿐이다.
아래는 필자의 저서 『국가경쟁력 향상의 길』(1999)에서 인용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경제발전에 정책의 우선적 목표가 “경제”라고 ‘말’해왔다. 정치인과 사법기관은 “경제인”이 지은 죄까지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는 했다. 그러나 국제체육행사의 거국적 유치, 운동선수에 대한 각종의 특혜, 체육인에 대한 훈장남발 등을 보면 한국 사회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실제로는 “체육”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이다.
우리와는 달리 유태인들은 학문발달에 대한 기여와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기능을 자랑한다. 노벨상을 받은 것은 단일 종족으로서 유태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1901~97년간 총 692인의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 98인이 유태인이다. 특히 자연과학 부문 수상자 중의 20% 이상이 유태인이다. 세계를 통틀어 유태인의 인구가 1,800만 명에 불과한 점을 생각하면 실로 가공할 숫자이다. ......
유태인들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특히, “미국의 정치인들은 유태인의 포로이다”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원조를 거의 중지하였음에도 이스라엘에게는 어김없이 매년 30억 달러를 무상지원하고 있다. 1995년 11월에 암살당한 이스라엘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대통령과 하원의장을 포함한 내노라 하는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수도로 날아갔다.
한편으로 전 세계 유태인의 마음의 고향인 이스라엘은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으로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기술개발에 집중하여 1990년대 말 현재 첨단기술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어쨌거나 유태인들이 ‘노벨상의 개수’를 세고 있을 때 우리는 ‘올림픽 메달 개수’를 세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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