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살리는" 길?
1998년 경제위기 때에 한 경제신문이 "경제 살리기 1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따지고 보면 우서운 일이다.
경제가 죽은 적도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캠페인 덕분에 살아날 것인가?
캠페인을 벌이면 최소한 아르바이트 생이라도 고용해야 되니까
경제활성화에는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그 논리는 케인즈의 가르침인
"구덩이를 팠다가 도로 묻는 방법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케인즈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생산성이 낮을수록 고용량은 증가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지출의 효율성이 낮을수록 고용인의 숫자는 늘어나겠지…
또한번의 경제위기인 2009년에 한 경제신문이 "일자리 나누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1998년의 경제위기를 금모으기 운동으로 극복했다"는 취지로 말한다.
글쎄 그랬으면 참 좋겠지.
금모으기 운동으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외환보유고가 적정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면…
아마도 세상 일이란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캠페인 벌인다고 어려운 일이 해결될까?
금모으기 운동이 과연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었을까?
온 인류의 선각자인 케인즈의 조언대로 구덩이를 팠다가 도로 묻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정답을 말하자면
언제 어느 때나 한국과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희소한 자원을 최대한 혹은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가야할 길이다.
고용확대가 급하다 해도 좀더 생산적인 일에 투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경제신문사라면 캠페인보다는
예컨대 지식정보 데이터베이스(KMS)의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든가
예비 기자를 뽑아서 제대로 된 경제기사를 쓸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사례 10-3> "금 모으기 운동"의 허실. 1997년 12월에서 1998년 2월까지 두 달 여에 걸쳐 집중적으로 벌어진 금모으기 운동은 그 규모나 강도에 있어서 유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범국민적이었다. 장롱 속에 넣어둔 금을 모아 수출함으로써 외화를 획득하여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의 이 운동은 정부조직, 언론, 금융기관, 기업, 시민단체, 교육기관 등이 모두 나서서 전국민이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참가하였고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획득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한국인의 잠재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하였다고 자평(自評)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대단한 일이었다고 인식되는 이 운동도 냉정히 따져 보면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① 비판이나 재고(再考)의 여지없이 바람몰이 식으로 진행되어서 많은 국민들에게 금모으기가 위기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 그것으로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국민 각자가 맡은 일을 더 열심히 하고, 각자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금 수출을 통해서 얻은 것으로 알려진 3~4십억 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나, 전체 외채(外債)의 규모에 비하면 미미하고 또, 그것이 한 번에 그치는 일인 만큼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이 필요해서 소지하고 있었던 금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수입하여야만 한다. 그렇게 보면 금을 모아 수출하는 것은 어려울 때에 소지품을 전당포에 맡기는 것과 같은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② 국민이 모은 것은 금 세공품(細工品)이고 수출한 것은 금괴(金塊)이다. 엄청난 세공비용이 용광로 속에서 녹아 없어졌다. 국민 각자가 금 세공품을 구입하는 것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면 용광로 속에서 녹아 없어진 그 세공비용을 언젠가는 다시 부담해야 한다.
③ 금은 고가품이고 가격의 변동이 심하다. ‘재산관리상’ 금을 판매하는 시기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불행히도 우리가 금을 모아서 한꺼번에 수출한 시점은 국제 금시세가 아주 낮았다. 우선 급하다고 앞뒤를 가리지 않은 격이다.
④ 국민 각자가 개인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데 금을 가져오면 애국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애국자인 것처럼 여론을 몰아간 것은 계층간에 위화감(違和感)을 조성하였다. 특히 부유층은 “장롱속”에 금괴를 숨겨두었다고 의심받았다. 소속된 조직체로부터 금을 가져오도록 강제 당한 일부 서민층은 금은방에서 금 세공품을 사서 제출하는 희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⑤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느라고 온 국민이 많은 시간, 노력, 비용을 들였다. TV 방영에 들인 비용만 해도 엄청나다. 금의 제련, 수송, 판매대금의 배분 등의 작업도 돈이 꽤 드는 일이다. (『국가경쟁력 향상의 길』1999, p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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