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수요가 결정한다 ?
표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면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는가? 모두가 그것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 당연하다. 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배운바가 있는 사람이라면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에 따라서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정답임을 알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덧붙이면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신성한 것이다. (The price is sacred.) 자유의지(voluntary trade)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장가격은 자원배분을 최적화시키므로 시장경제의 핵심이 되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성한 만치 시장가격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않다. 그러길래 "시장가격을 통제한다"는 것은 반시장적,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무릇 상품의 가치는 생산이 아닌 소비에서 나온다. 자발적으로 구매한 상품이라면 소비자가 얻는 가치가 지불한 가격보다 큼을 의미한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은 전체 소비자가 얻는 잉여가치, 결들여 전체 생산자의 잉여가치까지 최대화하므로 "자원배분의 최적화"가 얻어지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여러 형태로 시장가격을 통제한다. 아파트 가격, 휴대전화 통화 수수료, 학원 수강료 등등. 2009년 7월에는 학원 수강료 제한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행정법원이 판결이 나와서 정부가 망신을 당했다. 그런데 그 법원의 판결도 정확하지 않다. "폭리를 취하는 가격이라면 단속할 수 있다"는 취지의 단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시장경제에서 폭리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폭리"(暴利)라고 일컫는 것은 공급 비용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말하는 듯하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논리이다. 설명한 것처럼 시장가격은 공급과 수요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비용만으로 가격의 높낮이를 평가할 수는 없다. 비용에 비해서 높은 가격을 비난한다면 개인으로는 피카소가 기업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악덕의 표본이 되고 말 것이다.
"폭리 운운"에 대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의 또다른 문제가 있다. 우선, 현대경제에서 비용, 즉 "공급 원가" 는 매우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수치이다. 겐이치 오마에가 20여년전에 말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고정비의 시대"(fixed-cost environment)로 연구개발비, 자동화 시설비, 마케팅 비용 등의 비중이 매우 높다. 그런 고정비를 개별 상품에 배분하는 기준은 나라, 산업, 기업에 따라서 제멋대로이다. 정확한 원가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두번째의 추가적 문제는 기업(enterprise)은 위험감수(risk taking)와 동의어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사업을 통해서 돈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고, 이익이 날 때도, 손실이 날 때도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이 이익률이 높은 기업에게 이윤율을 줄이라고 말한다면, 선 마이크로 시스템처럼 적자를 보는 기업에게는 소비자가 보전을 해 주겠다는 말인가? SKT가 이익을 볼 때에 통화료를 내리라고 한다면, 적자가 나는 경우에는 도와주기라도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높은"의 기준은 무엇인가? 20%, 50% 아니면 100%, 200% ? 합리적인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원칙에 따라서 사업별로 차이가 난다는 정도의 말이 고작이지 적정 수익률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참고로, 원가가산 방식(cost-plus) 가격은 먼 옛날에나 통했던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수요자 중심의 "고객만족 시대"에는 가격을 포함한 제반 수요 조건이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거기에 맞추면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경쟁의 핵심이 되어 있다. 그래서 혁신과 변화에 뛰어나서 많은 수익을 꾸준히 올리는 마이크로 소프트, 오라클, GE, IBM 등의 기업은 사회에 크게 공헌하는 훌륭한 기업임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폭리를 나무란다면 한국에서 세계적 우량기업이 나올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주한 중국대사가 연전에 언급한 "한국이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적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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