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눈속이는 경제연구소
정치계가 각종 국제행사를 유치할 때에 흔히 내세우는 것이 경제적 유발효과이다. 그런데 그 말을 쓰는 사람치고 뜻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KDI, KIET, KIEP 혹은 SERI와 같은 전문연구소에서 경제학박사들이 쓴 용역보고서를 되풀이할 뿐이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용역을 딸 목적으로 작성된 타당성보고서가 모두 엉터리라는 점은 크게 우려할 사항이다. 국가자원이 항상적으로 잘못 배분되고 국민은 되풀이하여 우롱을 당할 뿐이다.
전문연구소의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FM”(典範)이다. 대통령 이하의 모든 정치인, 국무총리 이하의 모든 관료, 논설실장 이하의 모든 언론인, 대부분의 일반시민,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사실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보고서의 맹점을 찾는 데에는 박사학위는커녕 석사학위도 필요하지 않다. 대학에서 거시경제학만 배워도 알아 볼 수 있다.
이제 교재에 소개된 이론만으로 한국의 경제연구소가 발간해 온 국제행사 타당성보고서의 허점을 짚어보자. 논의를 위한 하나의 보기로서 2018년 동계올림픽을 택하고, 경기시설 건축 등에 총 3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가정한다.
1) 정부지출의 경제적 효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2년 월드컵의 타당성을 조사하면서 투입·산출 분석 모델을 사용하였다. 결론은 3.5조 원의 투입에서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5.3조 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총생산, 고용 등의 다른 “경제적 유발효과”도 소개했는데 별 의미 없는 숫자이다.) 여기서 “부가가치”는 다름아닌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기여를 말한다. 본시 GDP는 “한 나라에서 한 해 동안에 창출된 부가가치의 총화(總和)”이다.
GDP 창출을 가늠하는 데에는 다소 현학적인 투입·산출 분석이 아예 필요하지도 않다. 거시경제학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케인즈 교차점”(Keynesian Cross)만 확인해 보면 된다. 이제 우리의 질문을 “동계올림픽을 위해 투자하는 3조 원이 GDP 증대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느냐"로 정리하여 따져보자.
경제적유발효과그림(12-10).hwp (그림이 본 화면에 옮겨지지 않아서 별첨함.)
<그림1>은 케인즈 교차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정부지출 증가액에 수반되는 GDP 증대효과가 [1/ (1-MPC)]배가 됨을 말해 준다. 여기서 MPC란 한계소비성향을 말하며 위의 KDI 모델에서 역산하면 1/3 (0.333) 쯤 된다. KDI 방식에 따르면 동계올림픽을 위해서 3조 원을 투자하면 GDP가 4.5조 원가량 높아질 것이라는 결론이 된다. 참고로 정부지출보다 GDP 증대효과가 더 큰 것을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라 부른다.
유감스럽게도 그게 끝이 아니다. 정부지출에는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도 뒤따른다. 정부지출이 이자율을 상승시켜서 기업투자가 위축됨을 말한다. 승수효과와 구축효과를 두루 감안한 결과가 IS-LM 곡선에서 나타나는데 GDP 증대효과가 대폭 삭감된다. <그림2>가 그런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IS_LM 곡선 역시 어느 거시경제학 교과서에나 등장한다.
구축효과는 의외로 커서, 전문가인 배로(Robert Barro) 교수 등에 의하면 정부지출의 종합효과는 거의 언제나 1배 이하로 나타난다. 맨키우(Gregory Mankiw)의 경제학 교과서 Macroeconomics (제7판)에 소개된 자료(<Table 11-1>)를 인용하면 승수효과가 1.93일 때에 구축효과가 1.33이라서 종합효과는 0.60에 불과하다. 이것은 정부지출 3조 원에 따르는 GDP 증대가 1.8조 원에 불과하여 “유발효과”가 -1.2조 원임을 말한다. 여기서 “유발효과”란 GDP 종합효과에서 최초지출을 뺀 것으로 정의한다. (유발효과 = 종합효과 - 최초지출)
배로나 맨키우 교수를 인용하면 정부지출에 따르는 유발효과는 부(負, negative)이다. 따라서 본전도 건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치가 그러함에도 한국의 연구소는 구축효과를 확인하지 않는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셈이다.
구축효과를 간과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기회비용을 빠뜨리는 점인데, 이는 단순한 실수로 보기에는 너무나 엄중한 일이라서 용역을 맡은 박사들의 고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2) 맨키우의 경제학 원리, 그리고 기회비용
대다수의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되고 있는 맨키우 교수의 Principles of Economics는 10개의 경제학 원리와 더불어 시작된다. 제1원리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이며, 제2원리는 “기회비용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의 과제에 응용하면, “동계올림픽에 3조 원을 투자하려면 그것이 공짜가 아니며, 그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다른 대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지출 대안과 관련하여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참으로 재미있는 제안을 하고 있다. 소개하기 전에 경제학도가 아닌 사람을 위해서 GDP를 먼저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국가후생의 지표로 이해하고 있는 국민소득 혹은 국내총생산은 가계의 소비지출(C), 기업의 투자지출(I), 정부의 재정지출(G) 등의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소득= GDP = Y = C + I + G
이제 각종 대안을 살피고 GDP에 미치는 효과를 우선 짚어보자.
1) 기본안: 동계올림픽에 3조원 투자. 일단 최초 정부지출(G) 3조 원 만큼의 GDP가 증가한다. 종합효과는 앞에 나온 자료를 참고하면 최초지출의 0.6배 (맨키우) ~1.5배 (KDI) 사이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최소 1.8조원에서 최대 4,5조 원까지의 GDP가 창출된다. 그리고 남는 성과물은 "동계 스포츠 경기장"이다.
2) 케인즈(J.M. Kenes) 대안: 구덩이 팠다가 되메우기. GDP 창출 면에서는 기본안과 비슷하다. 남는 성과물은 "임야에서 전환된 대지"이다.
3) 바스티야(F. Bastiat) 대안: 가옥의 유리창 부수기. 일차로 3조 원의 유리창 소비(C)가 늘어나므로 GDP 역시 같은 액수가 증가한다. 종합효과 면에서 기본안과 비슷하다. 그리고 남는 것은 “외관이 개선된 주택”이다. 이게 바로 이른바 “어미너티”(amenity)의 일부이다.
4) 버냉키(B. Bernanke)의 대안: 헬리콥터에서 신사임당 뿌리기. 불로소득을 얻은 사람은 대부분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3조 원의 공짜돈 중에서 아마도 2.7조 원(90%)은 소비(C)할 것인바, 이것이 최초의 GDP 증가액이다. 앞의 방식대로 계산하면 GDP에 미치는 종합효과는 다른 네 가지 대안의 90%가 된다. 남는 유형물은 없다.
5) 필자의 대안: 인천에 해상부두 만들기 (『월드컵, 그 환희의 뒤끝』, 2002. PP.106~8): GDP에 대한 기여는 기본안과 큰 차이기 없다. 그리고 남는 것은 "상해의 양산(洋山)항과 유사한 해상부두"이다.
3) 케인즈 경제학이 의미하는 것
경제학자는 대충 짐작하지만 케인즈 경제학은 한물갔다. 크루그먼(Paul Krugman)을 제외하면 그에 집착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맨키우는 MIT에서 교육을 받았고, 하버드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그리고 스스로 주장하기 때문에 신케인즈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그는 지극히 프리드먼(Milton Friedman) 방식의 정책기조를 유지한 W. 부시 행정부의 경제수석으로 일한바 있다.
케인즈 경제학은 크루그먼의 말대로 “불황경제학”(depression economics)이다. 불황을 탈출하기 위한 비상조치를 말한다. 가계소비(C)와 기업투자(I)가 부족하여 나타나는 불황에 대한 응급처방으로 정부지출(G)을 늘리라는 것이다. 이때의 정부지출이란 뉴딜정책에서 보듯이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주종을 이루며, 경기장 신축도 이와 유사하다. 정부지출이 있으면 최초지출 및 승수효과/구축효과를 통해서 국민소득(GDP)이 증대된다. 불황에서는 사후효과를 따질 겨를이 없으므로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무조건 지출을 늘리고 보라는 것이 케인즈 경제학의 입장이다. 그 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Mankiw, Macroeconomics, p.298). 참고로 불황일 경우에는 구축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다.
국민계정 상으로 투자(I)도 국민소득으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투자 그 자체는 후생이 아니다. 예컨대 다리나 도로라면 비록 후생지수인 GDP에 포함되지만 그것을 먹거나 입으며 연료로 활용할 수는 없다. 투자의 유일한 가치는 그것으로부터 장래에 후생(welfare)이 창출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투자 그 자체가 “후생”이라는 목적(end)은 아니며 미래후생을 위한 수단(means)일 뿐이다. 결국 투자(I)의 진정한 가치는 당해 연도 GDP에 대한 기여보다는 미래후생에 따라 판별해야 마땅하다. <주: 각국의 국민계정에서 투자를 후생지수로 포함시키는 이유는 “효율적 시장의 가설”에 의존하여 미래 후생의 현재가치가 투자금액(I)과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인 동계올림픽 지출은 불황경제학과는 무관하므로 당연히 종합적 후생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지출의 GDP 효과뿐만 아니라 장기적 투자가치까지 포괄하여 정책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전제로 이제 정부지출 다섯 대안의 차이를 비교해 보자. 비교를 위해서는 최초지출(3조원)의 직접성과와 유발효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
유발효과. 설명이 단순하므로 유발효과를 먼저 살핀다. 대안별로 GDP 유발효과의 대소와 성격을 정확하게 판별하자면 최초지출 3조 원을 받은 수혜자의 경향을 알아야 한다. 한계소비성향을 파악하고 지출대상을 확인해야 한다. 그 작업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결과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을 전제하면 큰 의미도 없다. 그래서 유발효과의 성격은 다섯 대안이 대체로 동일하다고 치부해 두자. 다만 스포츠 경제학자의 말을 빌리면 운동장 건설이 다른 투자보다 유발효과가 낮은 점을 밝혀 둔다.
어쨌거나 여기서는 최초지출 3조 원에 대한 유발효과가 앞에서 계산한 바와 같이 -1.2조 원(맨키우) ~ +1.5조 원(KDI)인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 다만 버냉키 안은 돈을 뿌린 것이므로 최초소비 2.7조 원부터 GDP가 창출되므로 모든 것을 유발효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편의상 다섯 가지 대안에서 발생한 유발효과는 모두 그 자체가 “후생”인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이론적으로 정당화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투자가치 효과. 최초지출의 직접적 GDP 창출효과는 버냉키 안을 제외하고는 모두 3조 원이다. 바스티야 안에서는 최초지출 3조 원이 주택개선을 위한 소비지출C)이므로 그 자체가 후생이 된다. 나머지 세 안의 최초지출은 모두 시설만을 남기는 투자의 성격이므로 현재가 아닌 미래에 후생이 창출될 뿐이다. 최종판단의 기준인 후생은 오로지 사후의 활용가치에서만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와 같은 미래의 GDP 기여는 현가계산(present value)을 통하여 현재가치로 환산할 수 있다.
이제 다섯 가지 대안이 남기는 "성과물"의 현재가치를 종합해 보자.
1) 제1안: 동계올림픽 시설물. 어떤 경기장을 건축할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므로 비슷한 금액이 투자된 10개의 월드컵 경기장으로 대체해서 따진다. 월드컵 경기장 10개가 모두 사실상 비어 있으므로 별도의 효용은 창출되지 않고, 1년에 각각 50억 원 정도의 관리비만 들어간다. 연연세세 들어갈 관리비를 2% PA의 실질이자율을 적용하여 계산하면 총비용의 현재가치 계산된다. <주: 축구장의 조망가치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경관을 해치는 측면도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중립인 것으로 가정한다.>
10개 월드컵 경기장 관리비용 = 10 x ∑ 50억 / (1+0.02)t, t: 0 →∞
관리비용 총계 = 부(負)의 후생 = -2.6조 원
2) 케인즈 안: 구덩이 되묻기. 3조 원을 투자하여 임야를 대지로 전환하면 성과물의 현재가치가 아마도 6조 원은 될 것이다.
3) 바스띠야 안: 유리창 깨기. 소비는 현재의 후생이므로 창문개체 비용 3조 원 전액이 바로 성과물의 현재가치가 된다.
4) 버냉키 안: 돈 뿌리기. 최초지출의 성과물이 없으므로 현재가치도 없다.
5) 필자 안. 해상부두 만들기: 인천 앞바다에 해상부두를 건설하면 국제공항과 더불어 육해공을 겸비한 “동북아 물류 허브”가 조성된다.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여 가공할 경쟁력이 생긴다. 상해의 양산항을 어렵지 않게 추월할 있고, 중국에 뺐기고 있는 대양(大洋) 물류도 되찾는다. 줄잡아 30여년은 유지될 부두시설에서 생기는 GDP 기여도의 현재가치는 너끈히 10조 원은 될 것이다.
4) 최후의 심판
이상의 설명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종합 판단을 위해서 정리해 보면 <표>와 같다.
언론에 "경제적 유발효과“라고 보도되는 것은 아마도 단기적 GDP 증대효과를 말함인 듯하다. 표에서 보면 명백하다. 어느 대안이나 비슷한 규모의 승수효과 및 구축효과가 발생한다. 경제적 유발효과가 결코 경기장 건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GDP에 미치는 장기적, 종합적 효과는 표의 마지막 난에 나와 있다. 결론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하다. 설사 경기장 건설이 “국격”(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에 도움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할 타당성은 전혀 없다.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최악 중에서도 그런 최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상이 그러함에도 KDI, KIET, KIEP, SERI와 같은 초일류 경제연구소는 마치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유치했기 때문에 호박이 넝쿨 째 굴러들어 온다”는 인상을 시민들에게 심어준다. 고의든 과실이든 “결과적 국민우롱”이라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2010년을 전후하여 우리 모두는 경제적 효과에 목말라 있다. 그것이 선진국이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을 추격할 길은 요원해 보이고, 중국은 이미 턱 아래에 와 있다. 마음이 급하고 그래서 무엇을 하건 “경제적 유발효과”를 앞세운다.
경제적 효과를 위하여 어떤 대안을 고르느냐는 판단은 언제나 우리의 몫이다. 이제 차분하게 앉아서 콩인지 팥인지 따져볼 때도 된 듯하다.
<표> 대안별 경제효과 비교표
(단위: 조 원)
|
단기 GDP 증대 효과 |
성과물 |
GDP에 미치는 장기 종합효과 | ||||
최초 지출 |
유발효과 |
종합효과 |
성과물 후생가치 |
유발효과 |
종합효과 (현재가치) | ||
경기장 (경제연구소) |
3 |
-1.2~1.5 |
1.8~4.5 |
경기장 |
-2.5 |
-1.2~1.5 |
-3.7~-1.0 |
구덩이파기 (케인즈) |
3 |
경기장과 동일함 |
경기장과 동일함 |
대지 |
6 |
-1.2~1.5 |
+4.8~+7.5 |
유리창깨기 (바스띠야) |
3 |
경기장과 동일함 |
경기장과 동일함 |
주택 개량 |
3 |
-1.2~1.5 |
1.8~4.5 |
돈 뿌리기 (버냉키) |
없음 |
1.6~4.1 |
1.6~4.1 (90%) |
없음 |
없음 |
1.6~4.1 |
1.6~4.1 |
해상부두 (필자) |
3 |
경기장과 동일함 |
경기장과 동일함 |
해상 부두 |
10 |
-1.2~1.5 |
+8.8~+11.5 |
<주> 유발효과는 평상시를 가정한 것이며 불황기에는 달라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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