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EM 회의를 기억하시는지?
꼬박 일년 동안 국민을 설레게 했던 "G20 서울회의"가 끝나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한민국의 국위, 국격, 국가 브랜드에는 변화가 없었다. 혹시나 했던 "대한민국 재무장관에 의한 범세계적 환율 중재," "대한민국 대통령에 의한 중·일·미 화해"의 꿈도 할일없이 스러져 갔다. 시민들은 여전히 바쁜 일상생활에 쫓기고 있을 뿐이다..
한국은 2000년에 알 듯 모를 듯한 아셈(ASEM) 회의를 주최한 바 있다. 그 당시의 열풍은 G20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ASEM으로 국위가 높아지고, 나라는 살판이 난다고 하였다. 방문하는 국가수반을 위하여 철벽 경비를 하였고, 차량 2부제를 실시하였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애들아, 착하지. 손님이 올때는 조용하는 거란다"라고 타이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3년간에 걸쳐서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여 ASEM의 손님을 최대한 극진히 맞고자 준비하였다. 당시 무역협회는 단 2일간의 회의를 위해서 기업들로부터 부담금을 받아서 ASEM 타워도 짓고, 그 옆의 최신식 호텔도 건설하였다. 지하에는 광장을 만들어 온통 상가로 채웠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적어도 2조 원의 건설자금이 투입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회의가 끝난 다음에 ASEM 이 대한민국에 준 것이 무엇인가? 허망함 말고는 무엇이 더 있는가? 물론 봉은사와 인터콘티넨탈 호텔(구관) 사이에 별천지가 생겼지만,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왜 존재하는가? 필자같은 무지랭이에게는 그 옆을 지나갈 때에 겪는 교통지옥 밖에 느껴지는 것이 없다.
다 떠나서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ASEM 이 도대체 뭔 말인지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느라 떨었던 법석이 다시금 허망할 뿐이고, 꼭 크게 속은 기분이 든다. 결국 ASEM 자체는 홀연히 사라지고 "아셈 빌딩"만 남았다.
ASEM을 겪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그 때의 기록을 소개한다. 십여년 전에 호남지방의 모 대학교수가 "국민 사기극"이란 말을 퍼뜨린 적이 있지만, 세상에 ASEM 행사보다 더한 국민우롱이 있을까?
<보기 9-2>누구를, 무엇을 위한 아셈회의인가?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25개국의 대통령 혹은 수상이 2년에 한 번, 한 자리에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는 회합니다. 그 3차 회의가 2000년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 회의는 회원국의 성격이 워낙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아주 달라서 당초에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었고, 기왕의 회의에서 얻은 소득도 없었다. 한 외교 전문가(이장춘)는 서울 행사 직전에 “아셈 피곤증”을 운위하면서 그 모임으로부터 “실질적으로 큰 뉴스가 나올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 00. 10. 14). 저자가 보기엔 회원국의 관심이 점차 줄어들어 머지 않아 회의자체가 없어질 가능성도 많다.
아셈회의는 그처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별볼일 없는” 행사이다 (참조: 이대훈).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무슨 대단한 기회를 맞은 듯이 3~4년이나 앞둔 시점부터 거창하게 홍보하고 성대하게 준비하였다.
그 촌극의 출발은 아셈회의를 대비하여 무역협회가 서울 삼성동의 비싼 땅에 아셈회관과 호텔을 지은 일인데, 공식통계로 1조 2천억 원이나 투입되는 거대한 사업이었다. 무역진흥을 빌미로 회원사에서 수입부담금을 징수해온 무역협회가 하필이면 부동산 사업을 벌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안영도: p. 322). 부동산 사업은 그렇다 치고 단 25명이 참석하는 단 2일간의 회의를 위하여 온통 수입자재로 뒤덮인 호화스럽고 어마어마한 건물을 신축할 이유는 무엇인가? 건물 내부의 회의장에는 개당 1백만원이 나간다는 의자, 개당 4억원 짜리 프로젝터 등의 공개하기조차 거북한 호화판 수입집기가 채워졌다.
회의가 개최되는 10월이 되자 말자, 정부는 예의 그 “시민 괴롭히기”를 시작하였다. 질서를 잡는다고 갑자기 교통단속을 강화하였고, 서울시내 곳곳의 도로를 한꺼번에 덧씌우는 작업을 하여 교통혼잡을 유발하였다. 행사를 2일이나 앞둔 시점부터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지방차량의 서울 진입을 금지하였다. 행사장 주변에는 일반 차량의 통행을 막고 약 3만 명의 경찰을 배치하여 “사상최대의 경호작전”을 펼쳤다.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고 경찰은 밤잠조차 못 자고 시달렸다.
행사기간 중에는 한낮 도심지의 뻥 뚫린 도로와 건물바닥에 무리지어 잠자는 전경들을 담은 사진이 대중매체에 보도되곤 했다 (<도표 9-1>). 그런 장면을 보는 저자는 “한국의 소시민들은 자기 나라에서도 왜 저렇게 천덕꾸러기 신세일까”하는 생각에 혼자 서글퍼졌다.
그와 같은 화려한 시설, 극진한 접대 덕분에 한국의 이미지가 개선되었을 것인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동방의 이상한 나라”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각국의 정상, 특히 합리성을 존중하는 유럽 분들은 이렇게 중얼거렸을지 모른다: “원 세상에 2일간의 회의를 위하여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또 그것을 공개적으로 자랑까지 하다니. 더구나 엊그제 국가부도 위기를 맞아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가…. 어쩌면 OECD 회원국인 나라가 저토록 손쉽게 시민의 자유를 속박하고 그들의 편의를 무시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잔치의 후유증을 생각할 차례이다. 무턱대고 지은 대규모 회의장(convention center)의 사후 운영에서 적자가 초래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무역협회는 그 거대한 시설의 일부를 상가로 임대하여 손실을 보전하자고 나섰다. 그리하여 아셈회관과 호텔의 지하층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레저와 쇼핑의 중심지가 되었다. 밀려드는 차량 때문에 그 일대는 “교통혼잡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될 운명을 맞았다.
자, 그렇다면 아셈회의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무역협회는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안영도. 『월드컵, 그 환희의 뒤끝』, 2002. pp. 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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