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망국의 길

G20 회의가 뭐라고.....

안영도 2010. 11. 3. 13:29

국격은 성숙된 처신과 현명한 투자에서

 

누가 보아도 우리 민족은 참 독특하다. 그 중의 하나가 국제행사에 대한 관념이다. 2010년 11월초에는 이틀간 서울에서 열릴 G20 국가수반 회의를 두고 온 나라가 떠들석하였다. 정치 지도층은 회의를 유치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느니, 단군이래 최대의 행사라느니, 회의를 전후한 20일이 국격 혹은 국운 상승의 결정적 계기라느니 외쳤다. 그 회의의 유치를 두고 비행기 속에서 만세 삼창까지 했다니 그런 코미디가 없다.  대중매체는 뜬금없이 "G20 특별 순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하는가 하면, 차량2부제에 동참해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어야 한다면서 시민을 교육하였다. 심지어 어떤 연구소는 G20의 경제적 효과가 25조원이라고 떠벌였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아니 20명의 사람이 모여서 단 이틀간 회의를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라고 몇달에 걸쳐서 온 나라가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가? 정녕 "호들갑"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쓸 것이 없다.

 

대한민국이 G20에 소속된 것은 분명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제11위 경제대국이 됐음을 자랑했던 사실에 비추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 회의의 의장국은 정말 우연히 그렇게 됐을 뿐이다. 아마도 우리 정부가 강력히 희망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남들이 성가시게 생각하는 일을 누군가 맡겠다면 뜻을 이루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실 말이 좋아서 의장국이지, 단순히 회의 개최국일 뿐이다.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지만 행사를 주최하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다. 온갖 준비를 해야 되고, 행사에 임해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G20회의가 정확하게 그렇다. 막대한 인력이 2중, 3중의 경호 장벽을 준비해야 되고, 각종 생산 활동이 위축을 받으며, 시민들은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한 마디로 나라 전체로 보아 엄청난 노력, 시간, 비용이 소모된다.

 

비용을 투입해서 효과가 대단하면 그것은 투자이니까 나무랄 바 없다. 그러나 G20을 개최했다 하여 얻어지는 편익이 무엇일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필자가 보면 거의 없다. 경제적 효과? 정말 웃기는 일이다. 어쩐 일인지 한국의 경제연구소가 만드는 국제행사 보고서는 한결같이 기회비용을 빼먹는다. 예를들면 축구장의 일자리 창출효과를 계산할 때에 같은 금액을 호남고속철에 투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분명 돈이 남아도는 나라는 아니다. 그러므로 축구장을 지으면 호남 고속철의 완공은 그만큼 늦어진다. 경제적 효과에 관한한 누가 보더라도 호남고속철이 축구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마치 축구장을 지어야만 경제효과가 생기는 것처럼 국민을 오도한다.

 

G20 회의에서 경제외적인 효과가 있을까? 필자가 보기엔 거의 없다. 우리 국민들을 빼고는 회의 개최 그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본시 회의란 어느 장소에선가 열리게 되어 있고, 정례 회의이면 그 장소는 대체로 순환한다. 당초에 특별한 의미를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연히 G20 회의의 개최국이 됐다는 사실 만으로 대한민국을 다른 눈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국민 중에 지난 번과 다음의 G20 회의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알거나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G20 자체가 안중에 없고, 어디서 열리는지는 남의 일이다.

 

대중매체에는 간간히 외국의 명사가 "G20 의장국이 됐기에 한국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소개가 실린다. 그런데 그것은 그야말로 말치레(lip service)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말을 듣고 난 다음에 칭찬 받은 초등학생처럼 우쭐댈 일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국제행사의 개최가 결정됐을 때와 그것을 준비할 때에 언필칭 "국위"(과거에) 혹은 "국격"(현재에)을 들먹인다. 그런데 진정한 국격은 요란함보다는 차분함 속에서 생기고, 진적한 국위는 진시성 행사보다는 경제적 실속을 뒤따라 온다. 

 

국제행사는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정말 바보같은 투자이다. 2002년 반쪽짜리 월드컵을 위해 건설한 10개의 축구장은 모두 돈 먹는 하마가 돼 있다. 어떤 이는 상암구장은 흑자라고 우기지만 나 같으면 노란자위 같은 그 땅에 큰 연구소를 이어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보탬이 되게 하겠다. 당시 10개의 축구장 건설에 줄잡아 3조원은 투입된 듯한데, 그 돈으로 인천의 앞바다에 상해의 양산항과 같은 해상부두를 건설했다면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 났을 것이다. 우리와는 달리 미국은 1994년의 월드컵을 위해 단 하나의 축구장도 짓지 않았고, 광고수입만 짭짤하게 올렸다. 같은 월드컵을 처리하는 방식을 두고 미국이 성숙한가 한국이 성숙한가? 대회 개최 후에 국격이든 국위에서든 어떤 차이기 발생했는가? 

 

G20 회의도 예외는 아니다. 그 행사를 주최하느라 투입한 비용과 대통령 이하 공무원의 관심을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육아대책의 확충에 썼다면 진정으로 한국의 "국위을 성공적으로 신장시키고, 국격을 성공적으로 고양"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국제행사에 관한 한 이제 개최할만큼 했으니 모두가 차분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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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G20 단장 "쟁점은 주요국 '물밑협상'서 가닥" (매일경제 2010. 12. 11.) --G20 이 별거 아니라는 자백서. 떠드는 사람은 촌놈이라 설명